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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대 임신

Posted September. 04, 20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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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캠페인에 10대 임신 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러닝메이트 세라 페일린 씨의 17세 고교생 딸이 임신 5개월로 밝혀지면서다. 페일린 씨는 (아기를 낳기로 한) 딸의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운증후군 아들을 출산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부통령후보 딸의 임신이 대형 이슈가 되는 까닭은 전통적으로 미 대선이 낙태나 총기 소지에 대한 찬반 등 가치관 대결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진보 매체들은 매케인 선거캠프의 검증 허점과 페일린 씨의 자질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 신문은 임신한 딸 문제가 그동안 은폐돼 왔고, 이 사실이 폭로된 후 서둘러 아기 아빠와의 결혼이 추진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가족과 생명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보수주의자가 어떤 가정교육을 했기에 고교생 딸이 임신까지 하게 됐느냐는 투다. 부통령후보 낙마론도 슬쩍 거론된다.

하지만 페일린 씨 측이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상당수 유권자가 페일린 씨가 겪고 있는 가족문제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청소년의 40%가 14세 이전에 순결을 잃으며 1519세 소녀의 절반 이상이 한 번 이상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한다. 피임약 보급에도 불구하고 매년 75만 명의 소녀가 임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10대 임신에 이해심을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지난해 10대 임신을 다룬 영화 주노가 대히트를 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아무튼 페일린 씨 딸의 임신 문제는 여성의 표심()에 영향을 줄 것이다. 매케인 후보가 페일린 씨를 러닝메이트로 고른 것은 자신이 고령이란 점과 여성 표 공약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어느 정도 주효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조차 페일린 씨의 부통령후보 지명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여성 유권자의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낙태 지지 때문임을 감안할 때 가족가치를 강조하는 페일린 씨가 힐러리 의원 지지자를 얼마나 끌어들일지는 미지수다. 여성으로서 낙태를 지지할 것인지, 엄마로서 10대 딸의 임신을 받아들일 것인지, 이번 미 대선은 여성의 마음을 시험하고 있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