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7일 학내 분규로 교육인적자원부가 파견한 상지대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을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감독과 개입에 제동을 건 것이다.
재단 비리 등으로 파행 운영되는 사학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이 사학 법인의 설립 목적이나 정체성을 뒤바꾸는 선까지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 경과와 판결 내용=한약재료학과 폐지와 전임강사 임용탈락 문제, 이사장 구속 등으로 1993년 이후 10년 간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상지대 사태가 법정 공방으로 비화 한 것은 2003년 12월 이사회 의결 때문. 학교가 어느 정도 정상화됐다고 판단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 선임을 의결한 것이다.
그러자 1993년 일괄 사표를 냈던 김문기 전 이사장 등 구() 이사들은 이사회 결의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사건의 핵심쟁점은 이사회 결의에 대해 김 전 이사장 등이 소송을 낼 권리가 있는지와, 임시이사들이 정식 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있는지였다.
1심 법원은 이사회 결의에 하자가 있다 해도 구 이사들의 이사 사임 또는 임기 만료 후에 이뤄진 만큼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소송 자체를 각하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임시이사들의 일방적인 정이사 선임 결의는 본질적으로 학교 법인의 지배구조를 변경, 사학의 공립화를 초래해 보상 없는 재산권 수용에 해당한다며 김 전 이사장 등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하면서 학교 법인에 대한 국가의 감독권도 학교법인 설립자의 의사에 부합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를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행사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리를 저지른 학교 법인의 임원에 대해 그에 합당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이를 시정하기 위한 수단이 지나쳐 함부로 학교 법인의 정체성까지 뒤바꾸는 단계에 이르면 위헌적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학 설립자 측의 주장을 대폭 인정한 항소심 판단보다는 다소 절충적인 태도를 취했다. 교육의 공공성과 학교 법인의 자율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것.
대법원은 또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현행 개정 사립학교법 25조3항(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의 정상화 문제)에 대해서는 헌재가 최종 판단을 내릴 사항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이번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김문기 전 이사장 등이 다시 이사회에 복귀하거나 이사 선임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로 2003년 임시이사들이 선임한 정식이사들의 권한도 상실돼 상지대는 당분간 이사회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현행 사학법 제25조 3항(학교정상화 방안)에 따라 김 전 이사장 등의 의견을 들어 임시이사를 다시 파견하면 된다. 하지만 이사 선임 과정에서 양 측의 견해가 좁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번 대법원 판결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현행 개정 사립학교법 제25조3항에 대해선 헌재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헌재 결정에 따라 이 같은 교육부의 조치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또 국회에선 현 사립학교법에 대한 재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은 다시 임시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태가 되면 학교 정상화 시점에서 유효한 사학법, 민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현 사학법 조항의 위헌성 여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 등은 이번 판결로 정부가 임시이사를 선임할 때 의견을 낼 수 있게 됐다.
다만 이 조항은 구속력이 있는 강제조항은 아니어서 정부가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의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