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셉시온 피시오토(65)라는 미국 할머니는 지금도 워싱턴 백악관 정문 앞에서 반전, 반핵을 외치며 1인 시위 중이다. 올해로 26년째다. 미국 내의 수많은 자발적 평화운동가 중의 한 사람인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거침없이 악마라고 부른다. 그가 움막까지 쳐 놓고 이런 시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평화시위를 해 왔기 때문이다. 폴리스라인을 조금이라도 넘었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면 벌써 팔이 뒤로 꺾인 채 경찰에 끌려가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나라에서는 총 1만368건의 집회 시위가 있었다. 하루 평균 28건꼴이다. 어제도 서울 도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주최 측의 폭력 시위 전력을 이유로 금지하는 바람에 산발적인 행사에 그쳤다. 지난해 불법 폭력 집회 시위로 사법 처리된 사람은 9400명에 이르지만 구속된 사람은 30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형을 산 사람은 극소수다. 공권력과 사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1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평화시위연대가 집시법 개정을 국회에 청원하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집회 시위를 민주화 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사람들이 이 정권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공권력이 불법 폭력 시위에 온정적이라고 본다. 개정안은 평화 시위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법 폭력 시위와 도심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자는 내용이다. 현행 집시법은 1989년 3월 전문이 개정된 이후 다섯 차례나 부분개정됐다. 그래도 복면시위 같은 새로운 양상이 자꾸 나타나는 만큼 국회는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집회 시위의 권리와, 선량한 시민의 피해 보지 않을 권리는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 의견을 제압하는 행위는 민주국가에서 기본권에 속한다. 문제는 의사 표현의 방법이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 중에 불법 폭력적 의사 표현 방법에 우리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나라는 없다.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