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총선 부정시비 알바니아

Posted July. 06, 2005 00:37,   

ENGLISH

15세기 중반 알바니아의 전설적인 영웅 스칸데르베크가 오스만 튀르크의 침입을 막고 민족 통합을 이뤘던 잠깐의 시기를 제외하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 아래 신음해 온 알바니아. 지금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인구 350만여 명의 작은 나라다.

3일 실시된 알바니아 총선거는 유럽의 일원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선거였다. 그간의 선거과정에서는 중세 때부터 유명한 피의 복수 전통을 가진 알바니아인답게 갖가지 폭력사태와 부정선거 논란으로 얼룩졌다. 이번 선거 당일의 수도 티라나 시내는 일단 평온해 보였다.

길거리마다 총선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줄줄이 붙어 있고, 길거리 찻집에선 정치토론에 열을 올리는 듯 시끄러웠지만 평소의 알바니아 거리 풍경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게 벤이라 불리는 호텔 직원의 설명이다. 며칠 전까지 대규모 유세로 시끄러웠던 시내 중심의 스칸데르베크 광장도 여기저기 서성이는 실업자들과 거지들만 보일 뿐 한가한 모습이다.

사고가 없지는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1명이 총격에 피살됐고, 선거가 끝난 뒤 야당의 승리를 자축하는 집회에서 또 한 명이 숨졌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선거감시단 책임자인 모턴 오스테르가드 씨는 지난 10년간 이 나라의 선거를 지켜봤지만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보지 못했다며 이번 선거도 민주선거의 국제기준을 부분적으로 충족했을 뿐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거의 핵심은 정권의 향배가 아니었다. 초미의 핵심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알바니아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데 있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당성 있는 정부가 탄생했다는 미국과 유럽의 승인이 있어야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 정권 붕괴 이후 10여 년이 흘렀지만 알바니아는 다른 동유럽권 국가들과 달리 체제전환이 가장 느린 국가로 꼽힌다. 엄청난 내전을 겪은 인근 옛 유고연방 국가들보다 더 느리다. 수십 년에 걸친 공산독재의 결과 가난은 만성화됐다.

비공식적 통계로 실업률이 30%를 훨씬 웃도는 데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랄 수 있는 국경 통제마저도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니 주권 국가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지금도 알바니아인들의 해외 탈출은 계속되고 있다. 조직적인 불법 이주 알선업체가 성행하고 인신매매 조직마저 활개를 치고 있다고 IOM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EU에 가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며 목을 매고 있지만 최근 EU 국가들의 유럽헌법 거부와 터키에 대한 EU의 비토 움직임을 보면서 국민 사이에선 알바니아의 슬픈 여정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다.



이철희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