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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각체제 탈피 시도인가

Posted March. 24, 200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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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국제정세가 조선 말 개항, 개화기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지난달 27일 충남 천안시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은 전시관 안내를 맡은 기념관 강대덕() 부장에게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동북아 정세를 열강의 각축전이 치열했던 19세기 말20세기 초와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는 미일 간의 동맹 강화와 일본의 지도적 국가로의 부상 움직임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중국과 일본 간의 동북아 패권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100년 전과 유사한 상황이 재연돼 한반도의 정세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노 대통령의 시각인 듯하다.

독립기념관 방문 당시 노 대통령과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던 강 부장은 31절을 앞두고 의례적으로 기념관을 찾은 게 아니라 뭔가 비장한 각오를 다지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 제정안을 발의한 직후인 이 즈음부터 노 대통령은 대일() 외교노선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이후 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부터 일본에 대해 작심한 듯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먼저 노 대통령이 얼굴을 붉히더라도 할 말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배경으로는 한국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해외순방 과정에서 국력의 크기를 실감한 뒤 올 들어 그는 선진한국을 주창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는 이제 우리는 100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변수도 되지 못했던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세계에 손색이 없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스스로를 지킬 만한 넉넉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의중에 밝은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 났고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서 자신감을 갖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한국이 과거처럼 한미일 협조 체제의 틀에 묶여 있어서는 국익의 증진을 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동시에 동북아 정세의 지렛대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 없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는 것에 부정적이라며 필요할 경우 중국의 거부권 행사에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훈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