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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기 끊기, 전기 잇기

Posted March. 10, 200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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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체제 경쟁이 본격 시작된 것은 1948년 5월이었다. 북한은 남한이 전기요금을 안 낸다며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어 버렸다. 남한이 단독정부 수립으로 가자 농업 위주의 남한 경제가 북한 없이는 자립할 수 없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남한은 전기의 5060%를 북한에서 사서 쓰는 처지였다. 이후 남한은 공산품 생산량이 20분의 1로 줄고, 전등조차 제대로 켤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중화학공업과 사회간접자본 분야에서 남한을 압도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주체사상과 폐쇄 경제로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됐고, 남한은 개발독재였다고는 하지만 숨 가쁜 산업화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남북한 체제 경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남한으로 보내지는 전기를 끊었던 북한의 이문환 전기총국장이 지금도 살아 있다면 오늘의 남북한 현실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전기는 문명의 기본적 인프라다. 전기를 얼마만큼 쓰느냐가 풍요의 지표가 된다. 2003년 기준으로 북한의 발전량은 196억 kWh로 남한의 6%에 불과하다. 발전용량은 북한이 남한의 13.9%인 점을 감안하면 있는 시설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량의 차이는 그대로 경제력 격차로 이어진다. 남한의 자동차 생산 능력은 북한의 662배에 이른다. 시멘트는 10.7배, 화학섬유는 85.5배다.

단전() 57년 만에 남한의 전기가 북으로 간다. 5000가구분의 전력인 1만5000kW가 개성공단의 15개 한국 업체에 공급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요청한 전기 원조가 5년 만에 성사된 것이다. 아쉽게도 북한 업체와 가정에는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다. 전기가 이어지긴 하지만 절반만 통()하는 셈이다. 남녀 사이에도 상투적인 만남을 넘어 전기가 통해야 불꽃 튀는 연애가 시작된다. 끊어진 전기가 이어지듯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한 관계에도 짜릿한 전류가 제대로 통하는 날은 언제일까.

임 규 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