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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록문화

Posted March. 03, 200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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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도시가 몇 해 전 인도의 뭄바이 시()에 자매도시로 결연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었다. 뭄바이 시가 보내온 회답은 이미 당신들과 결연하고 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것이었다. 뭄바이 시는 관련 기록을 갖고 있었고 우리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망신을 당한 것이다. 한국에 기록문화가 없다고 개탄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없는 게 아니라 단절됐다는 게 맞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기록 유산 90건 가운데 우리 것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4건이나 된다. 각국 학자들은 조선의 통치기록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정회의에서 왕과 신하가 어떤 토론을 벌였는지 말 한마디까지 생생히 전한다. 그 뒤 기록문화 전통이 사라진 것은 식민지 지배와 625전쟁의 혼란 탓이다. 이후 권위적인 군사 독재와 불안한 정치 상황은 통치사료에서조차 큰 공백을 초래했다.

여러 대통령이 퇴임과 함께 기록까지 밖으로 가져가 버렸다. 부당한 권력 행사와 과오를 숨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이러니 아래는 더 엉망이었다. 통치자와 관리는 속성상 기록 남기기를 싫어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통치사료의 보존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했지만 스스로 일부 사료를 내놓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회 전반의 기록문화 부재가 낳는 부작용도 크다. 과거사 문제만 해도 진보세력은 장기간 그들의 이념을 뒷받침할 기록과 자료를 구축했지만 보수 세력은 반박할 근거가 여간 빈약하지 않다. 보수가 논리싸움에서 밀리는 이유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는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와 전쟁을 모른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당시의 체험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실의 균형이 잡힌다. 정부가 새로운 국가기록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한다.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아는 책임행정이 구현되려면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미래의 기록문화도 세워나가야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기록으로 눈을 돌려 현대사의 편향을 막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