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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상들의 우정

Posted November. 17, 200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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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이자 로라의 친구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 대해 언급할 때는 이런 수식어가 앞에 붙는다. 부인(로라 부시 여사)과도 가깝다는 점을 부각시켜 미일 정상의 우정이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수준까지 진전됐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외교소식통들은 해석한다. 최근 재선이 확정된 뒤엔 고이즈미 총리를 굿 맨(Good man)이라고 치켜세우며 거듭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또 다른 맹우()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향해서는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나는 행운아라고 했다.

블레어 총리와 고이즈미 총리는 국제무대에서 첫손 꼽히는 부시의 친구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과 여러모로 기질이 통하는 듯 기회 있을 때마다 친근감을 나타낸다.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일 때 푸틴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응원했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해 7월 이라크 무기와 관련한 정보조작 의혹에 시달리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고이즈미 총리가 전통여관의 잠자리까지 직접 챙기자 매우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속성을 고려할 때 정상간의 우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부시-블레어, 부시-고이즈미의 우정도 영국과 일본이 이라크전쟁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성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국가이익을 치열하게 다투는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라도 얘기가 통하는 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본인은 물론 국익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의 정상이 미국 대통령의 크로퍼드목장에 초대받는지 여부가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파급 효과를 발휘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격의 없이 우정을 나누는 외국정상은 있는가. 아직 없다면 20, 21일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새 친구를 사귈 절호의 기회다. 한국의 집권자가 국제무대에서 외톨이로 남는 것은 한국 국민으로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한반도 운명에 강한 발언권을 가진 정상과 의기투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