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가 뽀얀 게 아주 맛있어 보이네요.
추석을 앞둔 25일 오전 9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떡집.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석철 간사가 갓 쪄낸 떡을 보며 주인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우리가 파는 거랑 똑같은 건데 당연하지. 식기 전에 얼른 애들한테 갖다 줘.
벌써 67년째 명절이면 어김없이 떡을 후원해주는 떡집 주인은 이 간사가 가져온 탑차(냉장냉동 장비가 갖춰진 짐차)에 떡을 부지런히 옮겼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는 음식을 후원받아 지역복지단체나 아동센터 등에 전달하는 자원봉사단체. 1984년 일반인들의 후원을 받아 전국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급식 지원을 시작해 지금은 전국 20여개 단체, 70여개 시설을 후원하고 있다.
나눠서 더 기쁜 명절=이날 꿀떡 인절미 절편 시루떡 등 형형색색의 떡을 전달받은 서울시내 10여개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은 양손에 떡을 나눠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서로 자신이 받은 떡이 맛있다고 자랑하느라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이처럼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이 간사는 떡 하나 더 달라거나 우리 집엔 이런 거 없다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기관이 여러 곳이다 보니 넉넉하게 음식을 나눠주지도 못한다.
이날 떡 배달을 끝낸 이 간사는 평소보다 더 바쁜 일정을 짜기에 바빴다. 오후에는 명절 때마다 전과 부침개를 보내오는 서울 은평구에 사는 한 주부를 만나야 했고, 저녁에는 서울 청량리 청과시장에 들러 그날 다 팔지 못한 채소류도 받아야 했다.
그는 떡집 부부나 부침개 아주머니는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른다며 고마운 마음에 후원회 소식지라도 전해 드리고 싶지만 집에서 하는 음식 조금 더 했다고 손해 볼 것 없다며 손사래를 치신다고 말했다.
전국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이윤형 간사는 가족문화가 발달돼 있는 우리나라에선 명절음식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며 나눔이 미덕인 우리의 정서를 살려 있는 음식과 남는 음식을 조금씩 나누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함께 훈훈한 명절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모자란 이웃들의 십시일반=서울 종로구 노인복지회관 신선영 복지사는 요즘은 기업체 후원보다 지역 영세상인이나 업체들의 소규모 후원이 많은 편이라며 일정량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획성 있게 분배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나마 개인 지원도 최근엔 많이 줄었다. 인터넷 자원봉사모임 행동하는 양심은 추석 때마다 서울 영등포구 일대 쪽방 거주자들에게 송편을 전달해 왔지만 올해는 아직 필요한 쌀 100kg을 다 모으지 못해 고민 중이다.
운영자 문관식씨는 송편 6000개를 빚어야 그나마 몇 개씩 돌아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3년째 경기 안산에서 명절 때마다 독거노인들에게 20kg들이 쌀과 밑반찬 등을 후원해 온 십자가마을의 송정근 목사도 요즘 시름이 깊어간다.
올해 5월 부인이 과로로 쓰러져 음식을 할 수 없는 데다 최근 들어 뚝 끊긴 후원의 손길에 독거노인들을 찾을 엄두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송 목사는 그나마 외환위기 때는 기업체들이 일부러라도 찾아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정말 막막하다며 지역 주민의 밥 한 그릇, 반찬 한 그릇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