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슬픔의 샘, 입은 기쁨의 샘이다. 슬플 때 눈물이 나오고, 기쁠 때 웃음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심장이 사랑의 샘이라는 데 대해서도 동서고금의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시기심의 샘은 어디일까. 영어에는 시기심으로 노랗게 되었다거나 녹색이 되었다는 표현이 있다. 옛날 서양인들은 인체에 나타난 노란색이나 녹색을 담석증의 표시로 믿었다니 그들에게 시기심의 샘은 쓸개였던 셈이다. 그들과 달리 우리의 시기심은 배에 똬리를 틀고 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거나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이 청와대 직원들의 학습모임에서 한국이 부자가 되고 싶다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시기심에서 나온 반()부유층 정서와 하향평등주의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자 처방이라고 본다. 하지만 시기심이라는 게 버리려고 마음먹는다 해서 쉽게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시기심은 질기다. 오죽하면 시기심은 살아 있는 사람한테서 자라다 죽을 때 멈춘다는 시구나 시기하는 사람은 죽지만 시기하는 마음은 대대로 상속된다는 속담이 전해지겠는가. 이렇게 떨쳐내기 어렵다면 시기심을 생산적인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 발명된 경제체제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자본주의의 심리적 원동력이 이기심일진대 시기심이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독일 심리학자 롤프 하우블은 시기심이라는 저서에 시기심을 극복하는 형태는 우울, 분노, 야심 세 가지라고 썼다. 우울은 자책으로, 분노는 분배를 위한 투쟁으로 바뀐다. 반면 야심은 상대처럼 되기 위해 노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울과 분노의 경제적 귀결은 국가경쟁력 저하와 내수 침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우울과 분노가 아니라 야심이 시기심의 분출구가 돼야 한다. 그러자면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고 창의성과 생산성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부총리는 우울에, 여당은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한 경제가 살아날 리 없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