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통합돼 단일 거대 노총이 탄생할 것인가.
양대 노총 통합론자인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취임한 이후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노총 통합을 시사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 민주노총 본부로 이수호() 위원장을 찾아 협력을 다짐했다. 노동계 맏형을 자처하는 한국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찾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노동계 내부에서는 올해 안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통합 논의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양대 노총이 통합된다면 노동계에서 빅뱅(Big bang대폭발)이 이뤄지게 된다. 이는 재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로 나눠진 재계단체가 통합될 수도 있다. 양대 노총 통합론의 배경과 전망에 대해 살펴보자.
불붙는 통합론=지난 415총선에서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했다. 민노당은 10명의 당선자를 낸 반면 녹색사민당은 단 한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조합원 87만여명인 한국노총이 조합원 78만여명인 민주노총에 참패함으로써 노동계 세력 균형은 민주노총 쪽으로 급격히 쏠리게 됐다.
기존 한국노총 지도부는 총사퇴했으며 대표적인 통합론자인 이용득 위원장이 새로운 사령탑을 짊어짐으로써 통합론은 공론화됐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민주노총 관계자와 교분을 쌓으면서 노동운동 전선은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여러 차례 피력한 적이 있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 이 위원장을 만나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1국 1노총이 원칙이다. 양 노총은 단결하고 조직적으로도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화답했다.
적어도 양대 노총의 지도부는 통합론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공개적으로 확인됐다.
한 노동계 인사는 노동운동의 힘이 민주노총 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조직력을 갖춘 한국노총의 힘이 상당하다면서 한국노총은 통합 논의를 빨리 할수록 조직 역량에 상응하는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내부에서 통합론이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놓쳐서는 곤란하다는 분위기가 있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최근 양대 노총도 단일 깃발 아래 뭉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분위기 조성이 관건=두 위원장은 첫 회동에서 연대기구체 추진을 양대 노총 내부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해 통합의 첫 단추를 끼었다.
이용득 위원장은 통합 논의를 하면서 각자 공동 연대사업을 열심히 할 때 한 차원 높은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아직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있으니 상호연대사업기구를 만들어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섣불리 조직통합 협상에 착수하기보다는 다양한 사업교류를 통해 정서적 이질감을 먼저 해소함으로써 진정한 통합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노동계는 양대 노총이 연대사업기구를 통해 노동 관련 문화행사나 정책토론회, 포럼 등을 공동으로 주최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줄여나가고, 각종 노사현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체제는 과거에 비해 우향우를 하고 있는 반면 한국노총은 이용득 위원장은 좌향좌를 할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통합 논의가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있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양대 노총이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이념이나 목표는 거의 같다. 하지만 이들이 노래방에 같이 들어갔을 때 (각각 어떤 노래를 부를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양대 노총 조합원의 성향이 너무 달라 통합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양대 노총 내부반발 가능성=이용득 위원장은 임기가 내년 2월까지다. 이 위원장이 한국노총을 과감히 개혁해 조직을 장악하고 한국노총의 위상을 회복하면 통합 논의는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부 의견 조율에 실패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정반대 처지인 민주노총의 내부 사정도 만만치 않다.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양대 노총 통합이 필요하지만 아쉬울 게 없다는 분위기다. 또 일각에서는 이수호 위원장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조준모 숭실대 교수(경제학)는 양대 노총이 선명성 경쟁을 하는 것은 국가경제에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노총에 찬성한다면서 노총이 통합된다면 사용자단체도 전경련 경총 대한상의로 흩어져 있는 노사관계 기능을 하나로 묶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