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국민 3명 중 2명이 비만인 뚱보의 왕국이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녀가 한 손에 콜라를 들고 대형 햄버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장면이나 의자 여러 개를 합쳐야 간신히 걸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엉덩이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60kg이 넘는 몸매에 줄담배를 피우는 노처녀의 애환을 그린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가 크게 히트했던 것도 또래 여성들의 동병상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21세기 유일 강대국인 미국이 핵전쟁과 인종분규보다는 영양과잉에 따른 비만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국제비만특별대책팀(IOTFInterna-tional Obesity Task Force)은 최근 보고서에서 인류 최대의 질병은 암, 에이즈, 당뇨, 뇌중풍이 아니라 비만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7억명이 비만인데다 이중 3억1200만명은 허용한도보다 최소 13.5kg이나 체중이 더 나가는 뚱보들인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일찌감치 비만을 개인의 포식 등으로 인한 체중조절 잘못이 아닌 전염병으로 취급해 왔다.
문제는 서방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비만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 나우루 등지에서는 전통적인 식생활이 인스턴트식품과 튀긴 음식을 주로 먹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뚱보들의 왕국으로 변했다. 쿠웨이트 같은 부자 산유국과 세계 최대인구를 가진 중국도 속속 비만국가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IOTF 네빌 릭비 정책국장은 비만은 이제 선진국 질환이 아닌 범세계적 전염병이라고 진단했다.
비만의 세계화를 부추긴 요인은 무엇일까. IOTF는 우선 값싸고 풍부한 음식과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게 만든 기술의 발전을 든다. 음식을 요리하는 과정에서 기름과 지방의 소비가 지난 30년간 2배나 증가했고, 여성들이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인스턴트식품의 수요가 증가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제 비만은 개인의 영양과다와 관리소홀로만 돌릴 수 없는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우리도 이미 비만 선진국에 다이어트 강대국이 된 지 오래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