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과거:약속시간에 왜 늦었어(헌준) (한 선배에 의해) 여관으로 끌려갔거든. 거기서 강간당했어(선화) 너 내가 섹스해야 깨끗하게 되는 거야. 알았지?(헌준) 나 깨끗하고 싶어. 깨끗하게 해줘.(선화)
성현아=나의 과거에 대해 안 했어요하고 부정하고 싶진 않다. 누드집도 그렇다. 이 영화로 다 털어낸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나의 과거, 사람들의 선입견들, 모두 털어낸다. 이 영화로 감독님과 다른 배우들로부터 좋은 에너지 받아간다.
홍상수=성현아와는 뜻이 맞았다. 배우로서의 기술이나 기존 이미지보다는 열정이랄까, 영화를 통해 새로운 걸 열망하는 그런 인물됨. 배우로서 말고, 진짜 성격이 느껴졌다.
일상:다리에 털이 많네요. (성관계를 막 끝낸 문호) 털 많죠. 요새 안 깎아서. (선화) 다리털도 깎는 거구나.(문호)
홍=섹스라는 행동을 통해 나는 우리가 가진 의식의 허구성을 쳐다본다. 선배 헌준은 순결의식이란 관념에 묶여 고민하는 데 반해, 후배 문호는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네요 신음소리가 너무 예뻐요 다리에 털이 있네요라며 바보처럼 육체에 연연한다. 그런 대비가 재미있다. 섹스신은 늘 내게 행위만이 아닌, 대화 또는 갈등이 내재된 하나의 조각으로 다가온다.
성=학교 다닐 때 미팅 나가서도 그렇지 않나. 이에 고춧가루가 낀 것만 봐도 너무 싫어. 어림 혹은 젊음이란 이런 거 아닐까. 여자의 다리털에도 몸서리치는 남자.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하는 남자.
(홍 감독은 실제로 소주를 마시고 촬영장에서 잔 뒤 일어나자마자 부스스한 얼굴과 목이 잠긴 상태로 촬영에 들어갈 것을 성현아에게 주문했다. 성현아는 홍 감독님의 영화 속 여배우는 비비안 리처럼 아, 잘 잤다하면서 예쁘디예쁘게 일어날 수가 없다며 웃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내가 뭐라 그랬죠.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랬죠. (선화의 치마 속을 문호가 더듬자) 정말 못 들었어요. (문호) 남자들은 다 똑같아. 안아만 주면 진짜 같이 누울 수도 있었는데. (선화)
홍=제목이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들어도 멍하고 잡히지 않는 말이다. 이런 괴리감이 나를 흥미롭게 했다.
제목이 영화를 꼭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고 한들. 나는 뚜렷한 메시지를 정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디테일을 짜내지 않는다. 반대로 조각(디테일)들이 내게 먼저 다가오면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낸다. 관객의 반응을 본 뒤에야 아, 내가 드러내고 싶었던 게 이런 거구나하고 거꾸로 느낀다. 내 아이(작품)에게는 다 정이 가는 법이지만, 정작 아이(작품)의 성격은 담임교사나 친구들의 얘기가 더 객관적인 법 아닌가.
성=남자들이 속물이라고? 아니. 너무 귀엽다. 자신을 용서하라며 선화 앞에서 (담뱃불로 나를) 지져줘하는 헌준 같은, 남자들의 객기가 귀엽다. 남자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동물이다. 남자 둘이 술 먹다가 갑작스레 과거의 여자를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여자를 찾아가지 않는가. 그런 남자들을 한 여자가 품어준다.
그런 여자는 지나간 여자이든 앞으로 닥칠 여자이든 남자의 미래일 수 있다. 단, 미래가 늘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남자들은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