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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 지사의 선택

Posted December. 15, 2003 23:14,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3번째 내리 당선된 자치단체장 43명이 탄생했다. 3선 자치단체장 중에는 임기를 마저 채우지 않고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고 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연임이 3기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지방행정의 일선에서 주민과 접촉하며 조직력 득표력을 갖춘 자치단체장들의 움직임에 대해 현역 의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심대평(충남) 이의근(경북) 김혁규 지사(경남) 등 광역자치단체장의 운신은 더욱 주목을 받는다. 심대평 지사는 총선에 출마해 역할을 해 달라는 당내 기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의근 지사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김혁규 지사는 부산대를 나와 5급을(현행 9급)로 창녕군 읍면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읍면사무소에서 창녕군청 경남도청을 거쳐 6년 만에 내무부 본부까지 진입하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단돈 10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노점상부터 시작해 가방장사로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김 지사는 혁 트레이딩사를 설립하고 허리에 두르는 가방 벨트 파우치를 내놓아 히트상품을 만들었다. 옛날 보부상들이 찼던 전대()에서 힌트를 얻었다.

뉴욕 교민사회에서 가발 사업으로 돈을 번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호남 인맥의 대부였다면 가방 사업으로 돈을 번 김 지사는 부산 경남(PK) 인맥의 대부였다. 김 지사는 미국에서 뉴욕민추협을 결성해 민주화운동을 후원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사정 민정비서관을 거쳐 관선 경남도지사로 임명됐다. 관선 민선을 합하면 4선 도지사다. 그는 주식회사 경상남도의 최고경영자(CEO)임을 자처하며 작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는 대한민국의 CEO가 되려고 시도하다가 도중에 날개를 접었다.

한나라당은 당적을 바꾼 김 지사에 대해 배신자 변절자 공작정치의 산물이라는 극언을 쏟아 내 놓았다. 한나라당의 아성인 경남 현지 분위기도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김 지사의 당적 변경은 PK 공략에 당운을 건 열린우리당의 끈질긴 공들이기가 만들어낸 작품인 것 같다. 우리당 쪽에서 대한민국 CEO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야심을 자극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김 지사는 지방선거에서 당적을 보고 지지한 주민의 기대를 저버렸고 4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고 사퇴하려 하고 있다. 김 지사의 이런 선택에 대해 경남도민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