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 장관을 지낸 A씨가 털어놓은 일화 한 토막. 그의 장관 재임 시절 한 재일동포 사업가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 사업가는 조국에 번듯한 건물 하나 짓고 싶어 공사를 시작했는데 규제 때문에 진행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A장관은 실무자들에게 지시해 관련법과 규정을 이 잡듯이 뒤져 봤지만 규제조항을 찾을 수 없었다. 공사를 막은 규제의 실체는 실무자들이 관련 기관을 모두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밝혀졌다. 당시로부터 10년 전 국무총리실이 지방자치단체에 내린 철 지난 지침 하나가 문제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철통같은 규제는 여전한 모양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그제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규제의 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은 안 건드렸다. 골프장 하나 만드는데 도장이 780개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루에 하나씩 도장을 받더라도 꼬박 2년 50일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골프장 인허가를 받는 데 걸리는 기간은 35년이다. 인허가 기간이 이처럼 길다 보니 경험 없이 골프장 건설에 뛰어든 개발업자들이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중도에 망한 사례가 적지 않다.
군()이 골프장 1곳을 유치하면 연간 20억30억원의 지방세를 거둬들일 수 있다. 하루 고용되는 임시직만 해도 50150명에 이른다고 한다. 재정 확보와 고용 창출에 관심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라면 유치에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 지자체들이 우리 지자체들의 중요한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경쟁 전망은 한마디로 어둡다. 중국에서 골프장 하나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한국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중국에서는 지자체 고위 공무원들이 사업자들을 모시고 해당 관청을 찾아다니면서 도장을 받아 준다. 인허가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3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개발업자로서는 한국에서 골치 썩일 이유가 없다.
정부는 올해 3월 골프장 건설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골프장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해외 골프 여행객이 늘면서 귀중한 외화가 새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관에 신고하고 골프채를 들고 나간 사람은 매년 급증해 올해는 10만명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해외에서 골프채를 빌려 쓰는 인원을 감안하면 해외 골프에 따르는 외화유출이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까지 나온다. 3월 발표된 골프장 건설 규제 완화 대책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제조업 공동화가 심각한 마당에 서비스업까지 해외로 떠나고 나면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천 광 암 논설위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