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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테니스 선수 송두수

Posted February. 20, 200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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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당장 내 앞에 나타나 다들 환하게 웃을 것만 같은데.

차마 텅 빈 기숙사를 홀로 지킬 수는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뒹굴며 웃고 떠들던 방에는 이제 싸늘한 냉기만 맴돌았다.

대구가톨릭대 테니스부 주장 송두수(21체육교육과 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에서 그는 팀 동료 4명을 한꺼번에 잃는 아픔을 겪었다. 5명의 선수 가운데 김종석(213학년) 서동민(211학년) 김택수(18입학 예정) 방민휘(18입학 예정)가 모두 화를 입은 것이다.

사고가 난 18일. 송두수는 다른 동료들보다 1시간 일찍 혼자 숙소인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학교 기숙사를 나왔다. 새 학기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먼저 훈련장소인 대구교대로 간 것. 평소 훈련 시작시간은 오전 10시. PC방에 들러 수강신청을 한 그는 오전 9시50분경 이번 사고로 희생된 서동민의 전화를 받았다.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이 짧은 통화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훈련시간이 지나 아무리 기다려도 동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4명에게 일일이 휴대전화를 걸었으나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지하철 참사 소식을 들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실감나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송두수에게는 세상을 떠난 4명 모두가 소중한 존재였다. 지난해 하계대학연맹전에서 호흡을 맞춰 복식 우승을 했던 김종석과는 새봄이면 함께 교생실습에 나갈 부푼 꿈에 들떠 있었다. 후배지만 입학이 늦은 동갑내기로 여자친구 자랑을 많이 했던 서동민,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로 착하고 말도 잘 들었던 김택수와 방민휘, 하나같이 한솥밥 우정을 나누며 형제처럼 지낸 사이였다.

지난달 모처럼 온 천지가 하얗게 눈이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신이 나 교정으로 달려나가 사진도 찍고 눈싸움도 했는데.

사고 후 송두수는 동료들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대구 시내 병원, 상황실이 설치된 대구 시민회관 등을 정신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제 기숙사에 들렀다가 바로 뛰쳐나왔습니다. 다들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유품이라도 찾았으면.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에서 나는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홀로 살아 남은 송두수는 동료들의 부모님들 볼 면목이 없고 죄송스럽습니다. 저보고 너라도 살아 다행이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눈물이 나던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희생된 선수들의 모교인 대구가톨릭대는 20일 오후 7시 대구 계산천주교회에서 위령 미사를 갖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