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라는 말이 처음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877년 미국의 제19대 대통령 러더퍼드 헤이스의 취임식장에서였다. 한 기자가 헤이스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른 것이 시발이었다. 그런가 하면 퍼스트레이디 없이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도 있었다. 미국의 제22대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미혼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하지만 그 역시 취임 후 1년이 지난 1886년 가장 절친한 친구의 딸이었던 프랜시스 폴섬과 결혼했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49세였고 폴섬은 21세였다. 이 결혼식을 통해 퍼스트레이디라는 말이 더욱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미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디는 백악관의 혁신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184549년 재임)의 아내 사라 포크는 백악관에 처음으로 가스등을 달았다. 제23대 대통령인 벤저민 해리슨(188993년 재임)의 아내 캐롤라인 해리슨은 백악관에 전기시설을 했다. 제30대 대통령인 캘빈 쿨리지(192329년 재임)의 아내 그레이스 쿨리지는 라디오를 설치했다. 제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194553년 재임)의 아내 베스 트루먼은 백악관에 에어컨을 달았다.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의 인기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1989년 USA투데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13%였던 것에 비해 부인 바버라 부시의 지지율은 37%에 달했다. 반대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의 부인 메어리 링컨 여사는 언론에서 가장 혹평받은 퍼스트레이디였다. 1861년 8월 시카고 트리뷴지는 그녀가 경박, 방자, 품위없음 등의 이유로 너무나 혹독하게 공격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어지간히 해라, 이 정도면 충분치 않은가라는 논설을 게재했을 정도였다.
케이티 마튼은 퍼스트레이디를 가리켜 숨은 권력(hidden power)이라고 말했다. 또 혹자는 퍼스트레이디를 가리켜 선출되지 않은 권력(unelected power)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제 퍼스트레이디는 오히려 드러난 권력이 되었고 대통령과 패키지화된 선출된 권력의 당당한 일원이 되는 추세다. 한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역정에서 아내와의 파트너십을 배제하고 생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선의 막바지 열기가 뜨겁다. 우리는 과연 어떤 퍼스트레이디를 선택할지 자못 궁금하다.
정진홍 객원논설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atombit@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