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김응룡의 침묵

Posted October. 18, 2002 22:47,   

ENGLISH

고사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를 살릴 지도자는 김응룡 감독(61)이 제격이지.

월드컵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이 탄생하기 전의 일이다. 야구계에선 정말 황당하기조차 한 괴담이 꽤나 진지하게 회자됐다.

지난해 초 삼성 라이온즈가 삼고초려 끝에 그를 모셔올 때도 이런 심정이었다. 김 감독이 누구인가. 해태에서만 18년을 장기 집권하며 9번의 한국시리즈를 모두 승리로 장식한 우승 제조기가 아닌가. 실업야구 홈런왕을 휩쓸었던 선수 시절부터 그에겐 항상 최고라는 수식어만 따라다녔다.

하지만 삼성의 우승 청부는 첫해 보기 좋게 실패로 끝이 났다. 지난해 삼성은 전력상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음에도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양 두산에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만년 준우승팀 삼성에 내린 저주가 김 감독의 카리스마를 능가했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그래서였을까. 김 감독은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지은 그 기쁘기 짝이 없는 날에도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기자단 인터뷰에선 웃음을 보였지만 정작 선수들을 향해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그토록 말을 아끼는 코끼리 감독의 속내는 무엇일까.

사실 김 감독은 지난해 생애 첫 실패의 아픔을 겪으면서 남몰래 자신의 지도 스타일에 대해 많은 의문을 던졌다고 한다. 청탁불문 두주불사를 외쳤던 말술을 하루아침에 끊고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과는 달리 김 감독은 올 들어 더욱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시즌 초인 4월 말 잠깐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7월 초 7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선두 기아에 7.5경기나 벌어진 3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또 중반 이후엔 삼성과 관련된 잦은 빈볼 시비와 진갑용의 약물 파문이 퍼지면서 5년 계약을 한 김 감독의 능력과 거취를 문제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불굴의 승부사. 임창용과 함께 마운드의 쌍벽을 이루는 엘비라가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나가떨어지고 양준혁이 벤치를 오가는 와중에도 시즌 막판 15연승의 기적을 일궈내며 그동안의 잡음을 말끔히 씻어냈다.

이제 김 감독에게 남은 바람은 대구 팬들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축배를 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삼성에 걸린 저주를 풀고야 말겠다는 야심이나 개인적으로 야구인생 최고의 영광이 될 V10을 이루겠다는 등의 거창한 목표를 그는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소박한 한마디가 전부다.

프로야구 21년사의 최대 미스터리인 삼성의 7전8기가 올 가을 마침내 60대 노 감독의 손끝에 의해 풀릴 수 있을지 자못 흥미롭다.



장환수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