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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색 수중마을 한숨도 삼켰다

Posted August. 15, 200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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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남 지역에 내린 호우로 6일째 물에 잠겨 고립돼 있는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대항마을. 15일 오후 2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보트를 타고 돌아본 마을은 한마디로 거대한 황토색 호수 그 자체였다.

134가구 중 40가구가 고립된 대항마을은 물론 한림면의 인근 진말, 본장방, 술미, 모정마을 등 10여곳도 마찬가지였다. 수십만평의 농경지는 물론 집들도 대부분 물에 잠겼고 초등학교와 공장 등 2층 이상 건물만 겨우 일부분이 보일 정도였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아 어디가 어딘지를 분간할 수도 없었다. 깊은 곳은 수심이 5m가 훨씬 넘는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물에 잠겨 지붕만 보이는 학교버스와 트럭이 곳곳에 눈에 띄었고 가정용 LP가스통과 폐타이어, 빈병 등이 둥둥 떠다녔다.

한림면 일대는 현재 920여가구가 완전 침수되고 260가구가 고립된 상태. 장비가 들어갈 수 없어 폐사한 가축들이 동네 곳곳에 나뒹구는 가운데 악취가 진동했다. 침수되지 않은 고지대 주민들도 마을 어귀에 나와 형체도 보이지 않는 농토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항마을 개발위원장 박순도씨(46)는 논이며 비닐하우스가 모두 물에 잠겨 있어 지금 당장은 별 느낌이 없지만 물이 빠지면 주민들 모두 엄청난 실의에 잠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걱정했다.

한림정역에서 대항마을까지는 뱃길로 10여분. 마을에 출입하는 유일한 운송수단은 119구조대와 한국구조연합회 등 민간 구조대가 운행하는 30여대의 보트뿐이다. 주민들은 보트를 이용해 어렵게 육지 나들이를 하고 있다.

한국구조연합회 경기 남부본부장 최웅수씨(34)는 침수 직후 대원 40여명과 현지에 내려와 주민과 환자, 구호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며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림면 시산리 시호1구 주민 장모씨(50)는 당장 비가 그쳐도 물이 완전히 빠지려면 1주일은 걸릴텐데 농사까지 망쳐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계속 비가 내리는 데다 낙동강 상류 임하댐에서 15일 오전 3시부터 초당 600t이 방류돼 낙동강 하류의 수위가 내려가는 속도가 느려 물이 잘 빠지지 않고 있다. 특히 경남 지역에는 이날도 30 안팎의 비가 더 내렸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생활용수가 부족해 제때 씻지 못해 피부병까지 앓고 있다. 김해시 보건소 관계자들이 보트를 타고 들어가 방역과 예방접종에 전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정부가 이 지역을 재난지구로 선포해 특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남도의회도 16일 임시회의를 열어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건의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김해지역 주민대책위는 15일 한림면사무소에서 항의농성을 벌인 데 이어 이날 오후 7시 면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갖고 정부에 보상대책 등을 요구했다.

대항마을 이장 정성우씨(40)의 농기계 창고에서 된장국과 김치로 이웃들과 점심을 먹고 있던 최덕자씨(52)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던 상황을 이렇게 만든 정부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호우로 인한 피해는 경남 지역에서만 19명이 숨지거나 다쳤고 1800여가구 52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건물침수 1500동, 농경지 침수 5800여로 피해액만 1000억원대에 이른다.



강정훈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