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확인을 생명으로 하는 뉴스에서 익명 보도는 원칙적으로 피하는 게 좋다. 익명 보도를 해야 할 경우에는 납득할 만한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 두 가지의 대 전제가 흔들리면 뉴스와 소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독자들의 알 권리 역시 그만큼 줄어든다.
언제부터인가 실명 보도에 대한 언론의 위축증이 심해졌다. 익명처리가 정보원의 인권이나 사생활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의 소송에 대한 사전 대응방식이 되어버린다면 곤란하다. 관련 법규의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언론 스스로 자유를 신장하려는 적극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안은 다르더라도 검찰에 구속된 사람들 중 누구는 실명처리(7월12일자 A31면)하고 누구는 익명처리(16일자 A31면 휴지통)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 동일 기사에 동일 혐의로 언급된 사람들 중 일부는 실명처리하고 일부는 익명 처리한 경우(19일자 A1면)도 마찬가지다. 금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명시하는 과정에서도 불일치는 여전했다. 12일자 A31면의 탤런트 구속기사에서는 금품을 건넨 가수가 익명으로 처리된 반면 16일자 A31면의 연예기획사 비리 사건 기사에서는 가수의 홍보청탁과 함께 금품을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기획사 대표를 실명 처리했다.
사건의 당사자가 모두 익명처리된 사건기사가 기사로서 얼마나 가치를 지니는지 의문이다. 밤길 택시에 치이고도 멀쩡한 곽모씨와 그날 택시를 운전한 이모씨, 이를 목격한 문모씨(24일자 A31면), 도로에서 감전사한 홍모군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문모씨(24일자 A31면), 한국인 총각 박모씨와 재혼해 귀화한 중국 국적의 장모씨(22일자 A31면) 등 익명의 행진이 지면에 끊이질 않는다.
실제 사례가 골간을 이루는 각종 기획기사에서도 익명의 행진은 이어진다. 19일자 A31면 베이비 유학 붐 기사는 외식업체 매니저인 이모씨의 사례로 시작해 서울의 한 유학원을 찾은 김모씨의 사례로 끝을 맺고 있으며 주5일 근무제에 따른 중소기업의 사정을 다룬 18일자 A31면 기사에서도 K사에 근무하는 임모씨 K사의 근로자 이모씨 P사 김모 사장 등으로 취재원의 얼굴이 감춰져 있다.
17일자 A27면의 워싱턴발 기사는 한국 언론의 익명처리 관행이 타성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를 간접 보도한 이 기사에 김모씨로 등장하는 사람은 워싱턴 포스트 기사 원문에는 김기철로, 그의 부모의 이름까지 김경환, 권분희라고 똑똑히 실명으로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쓴 미국의 언론학자 코바크와 로젠스티엘은 언론인의 첫 번째 의무는 시민의 알권리 신장에 있다고 했다. 한국의 언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데에는 언론자유 관련 법이 미국과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도한 익명의 사용이 기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지는 않는지, 취재원 보호가 독자들의 알권리와 상충하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