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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일상 풀어주는 청량제

Posted June. 11, 200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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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월드컵 중계를 위해 내한한 HBS 미디어그룹의 스테파노 안드레올리(23)는 10일 오후 서울 세종로에서 수십만명이 한꺼번에 모여서 활화산 같은 힘을 분출하며 응원하는 모습에 압도당했다.

안드레올리씨는 이탈리아에서는 리그전에서도 응원 중 폭력 사태가 숱하게 일어나는데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인 월드컵 대회에서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자제력을 갖고 응원하는 것이 놀랍다면서 믿을 수 없다(Incredible)를 연발했다.

AFP통신은 한미전 전날인 9일 한국의 축구팬들은 세계에서 가장 점잖은 응원을 하지만 미국전이 끝나면 야수의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국 응원단은 축구를 축제로 승화시키고 성숙한 응원문화를 지켜냈다.

이 같은 모습이 외국인, 심지어 일본인의 눈에도 신기하게만 비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8일 대구발 기사에서 프랑스 기자의 말을 인용해 이런 응원단은 동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응원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데서 온 오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폭발적인 응원 문화의 뿌리는 무엇일까?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 같은 응원문화를 집단 히스테리의 범주에서 분석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집단 히스테리는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표출해서 해결하는 순기능으로도 작용하는데 우리의 응원문화는 이런 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우리 사회는 현재 정치 사회적으로 지도층에게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인데 시민의 잠재적 불만이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가 되면서 표출하고 있다는 것.

연세대 의대 정신과 민성길() 교수도 대체로 같은 견해였지만 이런 집단 히스테리는 절제되지 못하면 공황(), 집단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는데 축제로 끝난 것은 우리 시민의 높은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포츠학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스포츠는 줄곧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스포츠는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전쟁을 촉발시킨 것처럼 역기능으로 작용하지만 국내에서의 스포츠는 대체로 시민사회의 힘을 합치고 뜻을 표현하는 기능을 했다는 것.

운동심리학을 전공한 고려대 체육교육과 문익수() 교수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스포츠와 응원문화는 시민 사회의 의지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즉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의 간부들은 대부분 독립운동가였으며 당시 스포츠와 응원은 일종의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또 군사독재 시절 연고전이 벌어지면 대학생들은 시가에서 시위를 했고 시민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문 교수는 이번 장외 집단응원은 시민이 축구 응원을 통해 정치권 등에 가슴속에 응어리진 무엇인가를 표출하고 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특히 시민 운동의 성지로 평가받는 세종로 일대에 시민들이 운집하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성주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