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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간판혁명을 꿈꾸며

Posted March. 25, 200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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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서울시장 후보가 청계천을 되살리겠다고 말한 것을 듣고, 지금이라도 이 같은 논의를 시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곧 있을 월드컵 대회를 보려고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 때부터라도 청계천을 살리건, 한강을 살리건, 아니면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를 정비하건, 어쨌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도시의 본보기로 프랑스 파리를 떠올린다. 파리는 내가 5년간 유학생활을 하고, 2년에 한 번꼴로 자료를 구하러 잠시 다녀오는 유일한 외국도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 끼기도 하려니와 19세기부터 앞날을 내다보면서 꾸민 도시라서 당시와 생활조건이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불편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센 강의 다리를 머릿속에 그린다. 특히 루브르궁과 프랑스 학사원을 연결하는 퐁 데 자르(예술의 다리)를 거닐던 생각을 하면서 부러워한다. 나무를 깔아놓은 이 다리는 순전히 걷는 사람을 위한 다리다.

나는 한강에도 이처럼 부드러운 다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우리의 도시가 차를 타고 빨리 지나치는 도시에서 여유 있게 걷는 도시로 탈바꿈하는 날 그러한 다리도 생길 수 있으리라. 자살소동을 벌이는 다리가 아니라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다리를 놓을 때가 아닌가.

파리 시내에 육교란 없다. 우리나라에 비해 보행자가 훨씬 편하다. 신호등을 적당히 위반하면서 길을 건널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를 탄 사람이 평지로 달리도록, 걷는 사람은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가릴 것 없이 모두 육교나 지하도를 오르내려야 한다. 건널목에서도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은 불이 들어오자마자 곧 깜박이기 때문에 뛰어야 한다.

그럼 한국의 운전자는 보행자보다 편한가. 그럴 리 없다. 어느 위치에 차가 멈춰 있어도 신호등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마침 내 차가 맨 앞에 선 경우에는 신호등을 보기 어렵다. 운전대 앞으로 고개를 밀고 하늘을 봐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인가.

파리는 18세기 말부터 주소를 부여하기 시작한 도시답게 번지가 일정한 규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집을 찾기가 쉽다. 센 강 상류 쪽에서 하류 쪽으로, 센 강에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번지를 매겨놓았다. 그리고 길의 한쪽은 홀수, 반대쪽은 짝수로 번지를 매겨 편리하게 했다.

또 중앙에서 동심원을 그리듯이 외곽으로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으면 별 어려움이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간첩활동을 어렵게 하려고 그랬는지, 주소와 지도를 갖고도 집 찾기가 어렵다.

또한 한국의 거리에는 웬 광고판이 그리 많은지,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 도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외국 손님이 정신이 없어서 돈을 쓰고 가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가 아닐까.

파리에서는 광고물과 간판을 보면서 도시미관을 크게 해친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프랑스는 이미 200여년 전에 간판을 합리적으로 규제해 놓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1761년 파리 치안총감 사르틴은 먼저 간판의 크기와 높이를 정하고 규제했다. 곧이어 그는 모든 돌출간판을 달지 못하게 하고, 간판을 집과 가게의 벽면에 평평하게 붙이도록 명령했다. 이리하여 파리의 거리를 꽉 메우고 있던 괴물 같은 머리, 검술용 칼을 든 팔 같은 대형 돌출간판은 사라졌다. 18세기 후반의 인기작가였던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는 1782년에 쓴 파리의 모습에서 이제 삐죽삐죽 흉물스럽게 튀어나온 간판이 사라져서 파리는 아주 점잖고, 깨끗하고,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썼다.

우리는 아파트 문이나 전신주에 덕지덕지 붙이는 스티커, 가로형 간판, 세로형 간판, 돌출간판, 옥상간판, 현수막, 애드벌룬, 공연간판, 지주이용간판, 창문이용광고물, 선전탑, 아치 광고물, 벽보를 보면서 낮을 보낸다. 또 온갖 네온사인과 교회의 십자가에 전깃불이 들어오는 밤을 맞이한다. 나는 이러한 광고물이 서로 경쟁하면 할수록 광고효과는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월드컵을 앞두고, 이 기회에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간판을 정비해 깔끔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은 어떨까.

일단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편하게 잘 살아야 손님도 편안하게 다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명철(한국교원대 교수, 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