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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원장 서울 안 온다

Posted November. 30, 20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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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대북() 인식을 연이어 밝혔다. 우리가 보기엔 오히려 때늦은 변화다. 아무튼 우리는 이제라도 김 대통령이 달라진 대북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북측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기만 하던 대북정책의 기조를 전면 재검토하기를 바란다.

김 대통령이 엊그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지금은 단언할 수 없다고 한 것은 9월 초까지 무려 여덟 차례나 적절한 시기에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에 비해 크게 후퇴한 내용이다. 김 대통령은 얼마 전 지방순시 때에도 내 임기 중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햇볕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대북정책이 북측에 끌려 다녀야 했던 주된 이유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에 있었다고 본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매달리느라 사사건건 북측에 양보를 거듭하면서도 실속은 전혀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측의 억지 주장에 밀려 제6차 장관급회담을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가 끝내 회담이 결렬된 것이 가까운 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볼 때 김 위원장은 서울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우선 주변 여건을 볼 때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출범 이래로 북-미 대화는 완전 중단돼 있고, 911 테러참사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또 북측 입장에서 김 위원장 답방의 전제 조건이라 할 서울 거리의 대대적인 환영 인파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김 대통령은 이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김 대통령은 올해 안에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는 올 들어 줄곧 뒷걸음질만 쳤고 국민 여론만 더 악화됐을 뿐이다.

이제 김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과제는 지금까지 추진해온 햇볕정책을 재점검하고 거기서 얻은 교훈을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임기 말에 접어든 김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까지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우리 사회의 갖가지 갈등을 치유하기는커녕 또 다른 시비와 혼란만을 낳을 뿐이다. 김 대통령의 말처럼 임기 중에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는 김 위원장 답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