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국가 정기발전 포기했나](https://dimg.donga.com/egc/CDB/KOREAN/Article/20/01/10/26/2001102635138.jpg)
삼성반도체마저. 이것은 며칠 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34 분기에 38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음을 보도한 동아일보 경제면 기사의 제목이다. 우리나라 간판기업인 삼성전자가 그동안 황금 알을 낳던 반도체 부문에서 13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는 충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목이 특히 필자의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단순히 한 기업의 실적이 나빠졌다는 사실 표현을 넘어서 마치 믿고 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과 무력감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반도체는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받쳐 온 큰 기둥이었다. 반도체 수출은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세계를 상대로 당당히 뻗어나가는 우리 반도체기술의 모습은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이처럼 성장 한국의 상징이었던 반도체가 어렵다는 소식이,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정치와 사회 때문에 절망감에 사로잡힌 국민에게 알려진 것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업계가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 덤핑 시비를 걸 준비를 하고 있고 철강제품은 미국에서 산업피해 판정을 받아 수출길이 막힐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진실로 너마저 하는 탄식과 함께 과연 한국에 미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일찍이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기가 조금 빨리 왔다 뿐이지 지금과 같은 소품종 대량생산 위주의 반도체와 철강산업은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에게 조만간 추월 당해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은 모든 전문가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다 알려진 시험문제를 놓고 그 해답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갑자기 시험시간이 끝난 것이다. 아니 사실은 주위가 소란해서 시험문제를 제대로 풀 노력도 못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온 국민이 지혜를 짜내도 풀릴까 말까한 어려운 문제인데 무슨 게이트니 로비사건이니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정말 국가의 앞날이 달린 중요한 일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의 반도체나 철강산업의 어려움은 경기 순환이나 미국 일본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단기적으로 나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반도체와 철강산업을 중국에 내어 주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세계적으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같은 소위 강소국()들은 경쟁력 있는 산업이 몇 개 있어서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 반도체와 철강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국제경쟁력 있는 산업을 아직 키우지 못하고 있다. 민간의 힘이 모자라면 국가가 나서서 기반을 닦아주고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할텐데 정치지도자들은 눈앞의 이전투구에 휘말려 이 같은 일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공무원들도 움직이지 않고 국가의 장기발전전략은 표류하고 있다.
한 예로 7월에 발효된 과학기술기본법에 의해 앞으로 5년 동안의 국가연구개발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우게 되어 있는데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던 때의 열성이나 고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지식기반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려면 그 분야의 연구개발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답답할 뿐이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후발개도국의 중간에 끼여 어려운 상황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수립과 정책수행이 시급한데도 정치권은 국민의 역량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잘못된 빅딜정책으로 반도체 기술의 중국 이전이나 추진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미 엄청난 국민의 부담이 되고 있고 만일 중국에 핵심 시설과 기술을 판다면 국가경쟁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텐데 이처럼 잘못된 정책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무슨 게이트 같은 비리사건은 통 크게 보면 집안의 재물을 식구끼리 잘못 나누어 가진 것이지만 빅딜 같은 잘못된 산업정책은 집안의 호구지책을 통째로 남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라서 더 큰 문제다.
오세정(서울대 교수,물리학,본보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