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총체적 위기상황에 빠졌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붕괴, 정치실종, 경제 위기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이 일시에 터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개탄하는 사람은 많아도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은 감추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야당은 준비 안된 정책을 독선적으로 밀어붙인 정부 여당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고, 여당은 야당의 발목 잡기가 개혁을 그르쳤다고 맞받아 친다. 대표적 정책실패인 의약분업에 대해서도 정치권과 관료, 의약협회, 시민단체 모두 발뺌만 한다. 여기에 지식인들도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적 반응이나 힘 빠진 상대만 공격하는 하이에나 기질을 보이는 일이 많다.
그러나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중국 고전의 격언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이 정부나 일부 정치권만의 책임일까. 물론 집권층에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처럼 몇 명의 희생양만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가면 현재의 위기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고, 다른 위기의 재발을 막을 수도 없다. 특히 사회의 여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지식인과 정부 정책에 조언하는 전문가 집단은 제 역할을 하였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지식인의 대안제시를 목적으로 설립된 비전@한국의 창립기념 교육문제 심포지엄에서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대해 그동안 지식인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어느 방청객의 질타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국민의 정부 초기, 초중등 교원의 정년 단축과 대학 무시험 입학전형 정책에 대한 의견수렴을 목적으로 열린 교육부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촌지로 얼룩지고 신뢰가 무너진 우리의 교육현실이 너무 부끄러워 교원 정년단축에는 교사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찬성하는 의견을 표시했고, 대입 무시험전형에 대하여는 대학의 준비 부족과 예상되는 여러 부작용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었다. 이에 대해 주최측은 정년단축 찬성에는 흡족한 반응을 보였고, 대입 무시험전형은 장관의 강력한 의지라는 설명으로 밀어붙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같이 참석한 교육학자는 교육전문가의 논리를 들어가며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대변하였다.
이 회의의 모습은 국내 전문지식인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첫째,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도 전문가 행세를 한다는 점이다. 교원 정년단축은 국내 교육현장의 현실을 무시했다는 것이 이후 시행과정에서 드러났는데, 사실 초중등 교육현장을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의견을 내더라도 최소한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학부모로서의 의견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 둘째, 잘못된 것인 줄 알아도 힘있는 쪽의 심기를 거슬리는 일은 꺼려한다는 점이다. 장관의 소신이라는 한 마디에 뻔히 보이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꼬리를 내리는 일은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셋째, 자기 주장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로서 당시 정부 정책을 옹호했던 교육학자는 지금처럼 여론이 비판적일 때에도 당당히 소신을 밝히며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책임 있는 행동일 터인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항상 떠나간 관료에 대한 일방적 매도만 무성할 뿐,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토론이 안 이루어져 정책이 극단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이처럼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아는 것은 눈치보며 말 못하며,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기 때문에 지식인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러기에 정부가 전문성을 무시한 설익은 정책을 거침없이 양산해 내는 것이 아닌가. 지식인들이 자신의 잘못은 못보고 남의 잘못만 들추어내서는 진정한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오 세 정(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본사 객원 논설위원) sjo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