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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여백

Posted October. 11, 2021 07:21,   

Updated October. 11, 202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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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말하지 않는다.” ―정민·박동욱 ‘아버지의 편지’ 중

 떠올랐다. 이 짧은 말이 좋다. 옛 선비들이 자식한테 쓴 편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할 말과 걱정이 오죽 많았으랴. 그러나 편지의 말미는 대개, 다 말하지 않는다,였다. 그것이 참 고고하고 여여하다. 나도 실천하려고 애써봤다. 만만치 않다. 말을 하다 보면 어느새 끝장을 보자고 대드는 경박함에 여지없이 갇힌다.

 얼마 전 한 공연제작자와 작품 수정 회의를 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이래야 하지 않겠나. 그의 관점은 일리가 있었고 하는 말도 구구절절 옳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나는 분명히 수긍하고 동의했다. 그런데 희한하다. 나의 열정은 얼어붙었다.

 또 얼마 전이다. 한 작가와 수정 회의를 했다. 나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수긍하는 눈치여서 신났다. 아뿔싸. 끝까지 말해버렸다. 여지없었다. 이내 그이 표정은 어두워지고 남아있는 나는 공허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남겨두고 적당히 하다가 말아야 한다. 똑 부러지게 시비곡직을 따지면 관계가 틀어지고 더불어 살기도 애매하다. 연극도 그렇다. 감정을 다 표현하면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어야 볼만한 묘미가 있다. 여운과 여백이 없으니 아름다울 리도 만무하다.

 선거철이다. 갈수록 볼만하다. 서로 죽일 듯이 대들고 할퀸다. 다 말하면 진실이고 다 말하지 않으면 음모가 된다. 낭떠러지에서 끝장까지 봐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승자가 독식하는 것이 소위 정치라면, 나중에 51에 끼지 못하고 49가 되는 누군가는 또 몇 년을 천대받을 것인가. 바둑에서는 오궁도화나 매화육궁이 꽃처럼 피어날 때 손을 뺀다. 결국 두 집이 못 되고 질 꽃이라서다. 다 말하지 않던 옛 선비의 아량, 다 적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