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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은 기내, 오직 소리로 관객을 지배한다

칠흑같은 기내, 오직 소리로 관객을 지배한다

Posted March. 26, 2021 07:45,   

Updated March. 26, 20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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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암흑이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철저한 암흑이다. 이 상황에서 헤드셋을 썼는데 누군가 갑자기 말을 건다면?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고, 무한한 상상력을 뻗기 딱 좋은 환경이다.

 우란문화재단이 4월 12일까지 선보이는 극단 다크필드(Dark Field)의 이머시브 오디오극 ‘Flight(비행)’는 무대를 기내 공간처럼 개조했다. 관객이 가상 출입국신고서를 적고, 비행기 티켓을 받아 자리에 앉으면 “저희 비행기를 이용해주신 승객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항공기는 이륙한다.

 소리로 극을 이끌어가는 오디오극은 국내엔 아직 낯선 장르다. 이번 작품을 제작한 다크필드는 2016년 설립한 뒤 음향 기술을 활용한 오디오극의 최첨단을 달리는 영국 극단. 세계 투어에서 관객 11만 명을 모았다. 암흑 속에서 소리, 진동, 번쩍이는 섬광 등을 활용해 공감각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극을 제작해왔다. 시각이 차단됐을 때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는 동물적 본능을 노련하게 요리한다. 본래 40피트짜리 선박 콘테이너를 개조해 무대를 제작했으나, 이번 공연에서는 공연장을 개조해 완벽한 어둠을 연출했다. 개조한 무대는 보잉기 내부를 빼다 박은 듯하다.

 공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발한 오디오극은 다크필드의 제작자 겸 예술감독인 글렌 니스와 데이비드 로젠버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두 사람은 23일 본보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소리만으로 한 시공간에서 얼마든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테마파크에서 즐길 법한 경험을 ‘고급 예술’로 느끼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부터 소리를 갖고 놀며 극에서 다양한 실험을 즐기던 두 사람은 각각 현직 마취과 의사이자 순수미술 전공자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 감각, 의식, 무의식에 대한 호기심이 잘 맞아” 다크필드를 함께 설립, 오디오극 제작에 나섰다. 2018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내놓은 작품은 매진을 기록했다. “우리 공연은 관객 상상력이 전부다. 완성되지 않은 서사를 상상과 소리로 직접 채우면 된다”고 했다.

 극 시작 전 “내리실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스산한 기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어, 어쩌지?’ 우물쭈물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늦었다. 헤드셋을 낀 채 끝까지 비행을 마치거나, 헤드셋을 벗고 잠시 고요와 암흑을 즐기는 방법뿐. “같은 시공간에서 청각에 따라 완벽히 달라지는 두 가지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극 취지와도 맞는다. 관객에 따라 헤드셋 너머 들리는 굉음에 깜짝 놀랄 수 있다. 두 사람은 “꼭 공포심만을 주려고 한 건 아니었다”며 웃었다.

 4월 12일까지(화∼목요일은 공연 없음),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리허설룸, 전석 1만 8000원, 16세 관람가. 070-4244-3591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