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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보다 후추

Posted February. 09, 2021 07:40,   

Updated February. 09, 202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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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기본적 향신료인 소금조차 고대·중세에는 흔하거나 값싼 물건이 아니었다. 성 안에 전략물자를 비축할 때도 소금은 필수 물품이었다. 상업과 무역에서도 주요 상품이었다. 당연히 소금 생산지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항해시대의 향료 전쟁은 소금 전쟁보다 훨씬 대규모이고 국제적으로 벌어졌다. 후추는 고대 로마에도 소개되었지만 이때는 육로로 힘들게 운송됐다.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향료가 상선으로 수송될 수 있게 되었다.

 향료 가격은 시대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후추, 육두구, 시나몬 등 대표적인 향료는 전성기엔 거의 금값과 맞먹었다. 향료는 유럽 강대국들이 해양에 투자하는 계기이자 동력이 되었다. 아프리카, 인도양을 돌아 동남아까지 함대를 파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과 희생이 필요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단가가 높은 상품이 필요했다. 향신료만큼 여기에 적합한 상품이 없었다.

 상인과 군인, 해적의 구분이 거의 없던 시기였다. 유럽 각국의 선박이 동남아에 나타나면서 향료 생산지와 무역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유럽 각국끼리 싸우기도 했지만 원주민 왕국, 중국, 일본 해적까지 얽힌 국제 전쟁이 벌어진다.

 소금과 달리 향신료는 없어도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금보다 더 처절한 국제적인 분쟁을 야기했다. 나중에 ‘육두구가 페스트를 예방한다. 만병통치약이다’ 등 명분이 붙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렇다. 이런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생을 살아보면 개인의 삶은 결국 의식주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의식주는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지만, 점차 유복한 삶을 위한 조건이 된다. 더 나아가면 자기 과시와 권위를 위한 요소가 된다. 더 훌륭한 집, 더 우아한 인테리어, 더 풍요로운 식탁,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도 인간의 기본 욕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때로는 전쟁까지 이어지고, 무자비한 탄압과 비열한 범죄로까지 확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