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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오만

Posted October. 13, 2020 07:46,   

Updated October. 13, 202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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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이 쓴 수령의 지침서인 목민심서에는 군사행정 파트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징병, 동원 대상자를 관리한다거나 정기적으로 소집점검을 하고 훈련을 시키는, 오늘날로 치면 예비군 부대장이 하는 업무도 수령의 몫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다. 군사훈련을 하고, 뛰어난 무사, 군인 자원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까지도 수령의 몫이었다.

 목민심서에는 친절하게 그런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의 일화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읽어 보면 그 일화에는 결과만 소개하고 있을 뿐 방법, 훈련 방법이나 요령에 대한 설명이 없다. 무관 출신 수령이라면 모르겠으나 문관 수령이 무슨 재주로 평범한 농부들을 조련해서 정예병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강감찬, 윤관, 제갈량도 문관이었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아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타고난 능력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인재라면 목민심서도 필요 없을 것이다.

 정약용이 살던 18세기는 화약무기가 보편화되고 더 발전하던 시기이다. 총과 대포가 전장을 지배하면서 군의 전술은 복잡해지고 전술, 병참, 무기 등 군사 전 분야에서 전문적인 요령이 중요해졌다. 유럽에서 군사학교, 사관학교가 발달하게 된 것도, 부르주아 출신으로 엔지니어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장교로 두각을 나타내고 말을 타고 거들먹거리기나 좋아하는 귀족 장교를 배제하고 군을 지배하게 된 것도 군사행정과 전투에 전문성이 중요해진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목민심서만 봐도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부족하다. 정약용은 대단한 지식인이지만 특히 군사 분야에서는 비전문 지식인의 오만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전문가와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전문가 집단을 이권집단으로 보는 시각도 너무 세다. 집단 이기주의는 분명 심각한 악이고 모든 전문가집단의 고질적인 병폐이다. 그렇다고 전문성을 무시하고 아마추어리즘으로 대체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그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조선시대 군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