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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소리, 칸 단편영화제를 홀리다

Posted September. 15, 2020 07:32,   

Updated September. 15, 202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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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에 놓인 긴 의자. 가야금 연주자들이 차례로 누웠다 떠난 의자 위에 검은 연주복 차림의 작곡가가 눕는다. 뭔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난 그는 긴 악보를 펼쳐 읽는다. 이윽고 연주자들이 악기를 들고 복도를 지나 계단 아래 숲에 다다르고,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연주가 시작된다….

 서울대 현대음악 플랫폼 ‘스튜디오 2021’이 제작한 12분짜리 뮤직비디오 ‘고다 Simmering’의 내용이다. 영상 내내 들려오는 세 대의 가야금 연주는 학생 작곡가 황재인(서울대 작곡과 4학년)의 작품. 연출은 페르마그누스 린드보리 전 서울대 작곡과 교수가 맡았고 국악과 석사과정 학생들로 구성된 ‘서울가야금앙상블’이 연주했다.

 황재인의 가야금 곡과 제목이 같은 이 영상은 8월 칸 단편영화제(칸 영화제와는 다른 영화제)에서 ‘오피셜 실렉션’에 선정되었다. 5월 싱가포르 세계 필름 카니발에서는 뮤직비디오상과 데뷔영화상을 수상했고 7월 인디X 영화제에서 최고 뮤직비디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곡을 쓰고 영상 속의 ‘작곡가’를 연기한 황재인은 “당초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상에 나오는 신경질적인 작곡가와 크게 닮지는 않았지만, 작곡 전공자로서 창작의 고통을 영상화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밝혔다.

 곡 제목인 ‘고다’는 ‘고기나 뼈 따위를 푹 삶다’는 뜻. 황재인은 “고요에서 복잡으로 진행하며 재료는 껍데기만 남는 ‘고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영상에 함께 출연한 서울가야금앙상블을 위해 열흘 만에 썼다. 기자가 “귀에 어렵지 않게 와닿는다”고 했더니 “한국 음악이라는 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가진 특징을 여러 가지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답했다.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에서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하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영재원에서는 해금을 전공했다. 서울대에서도 해금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번 영상의 음악으로 쓰인 ‘고다 Simmering’은 스튜디오 2021이 제작 중인 음반 ‘새로운 음악 공동체를 위하여’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수록될 예정이다.

 이 영상의 총감독을 맡은 이신우 서울대 작곡과 교수(스튜디오 2021 예술감독)는 “최근 창작음악계는 뮤직비디오 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소통의 채널들로 접근하고 있다. 학생들과 교수진이 협업한 결과 이런 채널을 통해 인정받은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윤종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