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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홀 기적의 칩인 이글...이미림 ‘메이저 퀸’ 등극

18번홀 기적의 칩인 이글...이미림 ‘메이저 퀸’ 등극

Posted September. 15, 2020 07:33,   

Updated September. 15, 202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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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선두 넬리 코르다(22·미국)에 2타 차로 뒤지고 있던 18번홀(파5). 우승을 꿈꾸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투 온 시도로 마지막 승부를 걸었지만 공은 그린을 넘겨 펜스 앞까지 굴러갔다. 마음을 비운 듯한 표정을 지은 이미림(30)은 홀을 향해 가볍지만 과감한 칩샷을 날렸다. 살짝 띄운 공은 내리막 그린을 타고 9m가량을 빠르게 굴러가더니 깃대에 맞고 홀에 그대로 ‘쏙’ 빠져 들어갔다. 기적 같은 칩인 이글로 공동 선두에 오른 순간이었다. 이미림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캐디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행운처럼 맞은 연장전에 합류한 이미림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18번홀에서 치러진 1차 연장전에서 함께 플레이 한 코르다와 브룩 헨더슨(23·캐나다)은 모두 버디 퍼트를 놓쳤다. 하지만 이미림은 침착하게 2m 거리에서 버디를 낚으며 드라마처럼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환상적인 숏 게임을 보여준 이미림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하며 ‘호수의 여인’이 됐다. 이 대회 우승자는 18번홀 옆에 있는 포피스 연못에 뛰어드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미림은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 미션힐스CC(파72)에서 끝난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4개,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쳐 최종 합계 15언더파 273타를 기록한 뒤 3명이 치른 연장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2017년 3월 KIA 클래식 이후 3년 6개월 만에 거둔 우승이자 개인 통산 4승째다.

 우승 직후 감격의 눈물을 쏟은 이미림은 “대회 나흘 동안 오늘 경기가 가장 안 풀렸는데 행운이 따른 것 같다”며 “우승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미쳤구나’ ‘잘했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평소 장타자 이미지가 강했던 이미림에게 이날 웨지는 마법의 연장 같았다. 18번홀 칩인 이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환상적인 어프로치를 선보였다. 6번홀(파4)에서는 벙커 뒤편에서 한 칩샷을 버디로 연결시킨 데 이어 16번홀(파4)에서도 그린 바깥에서 높게 띄운 칩샷으로 칩인 버디를 추가했다. 이미림은 “하루에 칩인 세 번은 평생 처음”이라며 “여전히 우승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24개 대회에 출전해 2차례만 톱10에 드는 부진을 보인 이미림은 올해도 앞서 출전한 2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하며 세계 랭킹은 94위까지 처졌다. 지난주까지 상금이 0달러였던 그는 이번 우승으로 46만5000달러(약 5억5000만 원)를 받아 단번에 상금 랭킹 7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훈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