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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되찾고 싶어”

Posted July. 20, 2020 07:56,   

Updated July. 20, 202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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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이정수라는 개그맨이 있었다. 그는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지”라는 유행어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20년 바야흐로 대(大)자가격리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그때 이정수가 외치던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친구가 무슨 소용입니까”라는 말에 마냥 웃을 수 없게 됐다.

 혼자 잘 노는 법에 대한 고민은 21세기에 처음 출현한 기현상도 아니요, 미제 개인주의에 찌든 젊은이들이 우리 공동체를 붕괴시키려는 전조도 아니다. 이 씨가 무대에 등장할 때 외친 유행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2500여 년 전 인도 북부 작은 나라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어머니 배 속에서 뛰쳐나오자마자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불교 수행법에는 혼자서 하는 것이 유독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명상일 것이다.

 명상하는 스님들이 멋있어 보였는지 선비들도 가만히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유학자의 명상법은 대체로 중국 북송(北宋) 시기에 몇몇 철인들의 토론 끝에 정립됐는데, 그중 정이(程이·1033∼1107)의 공이 컸다. 정이는 우리 마음을 물병으로 비유했다. 빈 병을 강물에 던져 놓고 물이 들어오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병 속에 자꾸 물이 들어오는 게 근심이라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병을 미리 채워버리면 된다. 마음을 비우려면 마음을 채워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조선을 설계한 인물인 정도전(1342∼1398)은 명상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명상하겠다고 절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 있다고 치자. “그럼 소는 누가 키워?”

 현실주의자인 정도전은 누군가가 카페라테의 도움으로 집중력을 돋우며 재택근무에 들어갈 때 바로 그 커피를 누가 내리는지와 같은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가 격리와 혼자 놀기는 타인의 도움 없이 마법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

 만일 산속에서의 명상만이 해탈의 지름길이라면 우리는 해탈할 기회가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산속에 앉아 명상하는 수행자는 그를 봉양하는 사람들이 해탈할 기회를 착취하고 있는 종교 자본가는 아닐까? 정도전은 스님들이 명상하는 동안 절의 살림살이를 돌보느라 소를 먹이고, 밭을 가는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꿈꾸었던 도가(道家)의 사상가들 역시 비슷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더러운 속세에서 물러나서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면서 그러한 삶을 찬양하는 시와 산문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탈속(脫俗)은 값비싼 취미다. 당장 이 은거자들이 자연을 벗 삼아 명상하는 사치를 누리며 아름다운 글귀를 쓸 수 있도록 누군가는 더러운 속세에서 종이와 붓과 벼루와 먹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았을 것이고, 은거자의 하인들은 적지 않은 돈을 들고 나와 물품을 사갔을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어떤 것이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처럼 보일 때조차 사실은 누구에게만 허락된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 인터넷 공간에 자가 격리, 방역 등에 대해 폼 나게 말하는 동안 누군가는 댓글을 남길 시간도 부족하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지금 남기는 글과 댓글 등이 빅데이터로 쌓이고 22세기 어느 역사학과 대학원생의 박사논문 주제가 될 것이다. 그가 광범위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21세기 코로나19 시대에는 한국인 대부분이 집에서 혼자 놀았다’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할 때, 그의 지도교수가 이렇게 답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석기(石器)시대야. 땅을 파는데 자꾸 석기만 나오니까 석기시대, 석기시대 하는 건데, 생각해보렴. 네가 무인도에 표류하면 석기도 조금 만들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목기(木器)를 가장 많이 만들어 쓰지 않겠니? 선사시대 인류도 그랬을 거야. 다만 땅속에 석기만 남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너도 인터넷에 남은 기록이 그 시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마. 인터넷에 남지 못하고 코로나바이러스가 먹어버린 현실 세계의 질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단다.”안동섭 중국 후난대 악록서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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