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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 담겼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에 프랑스 혁명의 정신 담겼다

Posted June. 30, 2020 07:48,   

Updated June. 30, 202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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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는 베토벤의 교향곡 중 대표적 작품입니다. 전 교향곡 역사를 통틀어서도 기념비와 같은 작품이죠.

 이 곡 1악장은 세 음표가 연달아 나오는 강렬한 동기로 시작합니다.

 우연이지만 모스 부호에서 이 동기처럼 세 번 짧게, 한 번 길게 누르면 알파벳 ‘V’를 뜻합니다. 로마 숫자로는 ‘5’이며, ‘승리’를 나타내는 ‘Victory’의 첫 글자이기도 하죠.

 이 곡은 흔히 ‘운명 교향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토벤의 비서를 자처했던 안톤 신들러가 베토벤 사후에 “베토벤 선생은 내가 보는 앞에서 악보를 가리키며 ‘이렇게 운명은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던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신들러는 베토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꾸며냈고, 베토벤이 다른 사람과 필담(筆談)을 하는 데 사용했던 대화록까지 위조한 일이 밝혀져 그의 말은 대체로 믿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대지휘자 토스카니니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운명도 그 무엇도 아니고, 악보에 쓰인 대로 ‘알레그로 콘 브리오’, 즉 ‘활력 있는 알레그로’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세 음이 나란히 나오는 이 동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을까요?

  ‘운명’ 아닌 다른 의미가 이 동기에 들어 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 지휘자이자 음악학자인 존 엘리엇 가드너가 그런 사람이죠. 그는 5번 교향곡 1악장이 당시 프랑스 혁명파들의 노래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혁명기 작곡가 루이지 케루비니의 ‘팡테옹 찬가’에 이 노래가 들어 있습니다. 빠른 세 음표 동기를 주고받는 점이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과 매우 비슷하게 들립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과 같은 해에 나온 프랑스인의 교향곡도 주목할 만합니다. 베토벤보다 일곱 살 많았던 에티엔 메윌(1763∼1817)의 교향곡 1번 4악장입니다. 이 곡 역시 세 음표 동기가 여러 파트에 번갈아 주고받듯이 등장합니다.

 메윌과 케루비니는 이른바 ‘구출 오페라’의 대표였습니다. 이들과 베토벤의 활동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던 때였죠.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오페라 형태가 구출 오페라입니다. 주인공은 고귀한 사상을 가진 혁명파 인물입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헌신적인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탈출합니다. 베토벤이 쓴 단 하나의 오페라 ‘피델리오’도 이런 구출 오페라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독일에서도 네덜란드나 프랑스와 가까운 라인강 유역의 본에서 태어났죠. 프랑스 계몽주의와 혁명 정신의 바람이 바로 전해지던 곳이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은 베토벤의 마음을 거칠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늘 귀족의 후원을 받았지만 예술가라는 존재가 귀족보다 우월한 인류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기 전에는 왕정을 전복한 프랑스에 호의를 보였고, 뒤에 영웅교향곡으로 불리게 되는 교향곡 3번을 ‘보나파르트 교향곡’으로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고 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인접국을 침략하자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에는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을 둘러싼 환경은 ‘운명’이었지만 그는 이런 운명의 팔을 비틀어 극복하고 말겠다는 초인적인 의지로 삶을 헤쳐 나갔습니다. 이런 그의 삶은 타고난 기질이나, 난청을 이기고 작곡가로 성공했던 개인적 인고의 과정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격동의 시대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면 그의 교향곡 5번이 ‘운명’을 넘어 새롭게 들릴 것입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다음 달 3, 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정기공연에서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오페라 ‘피델리오’의 서곡으로 작곡된 그의 레오노레 서곡 3번 등을 연주합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