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비핵화 사기극, 南의 어설픈 중재자 허상 드러낸 볼턴 회고록

　남북미 3국 정상의 비핵화 협상 내막을 폭로한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전문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그의 책 내용을 모두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3국 정상들이 정치적인 계산을 앞세우고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로 일관한 정황들까지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작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제안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회담에 나가도 좋다는 그린라이트를 준 셈이다. 하지만 그후 북한이 보인 태도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의도를 오판했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확대해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만든다.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은은 그후 하노이 협상에서 끝까지 고철덩어리에 가까운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모든 유엔 대북제재를 해제하라며 그 누구도 받기 어려운 제안만 고집했다.

　재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도 김정은이 북-미 회담을 제안해 중재에 나섰다는 우리 정부의 설명과는 다른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만나라고 제안했고, 트럼프에겐 김정은이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엔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전하고, 북한에는 제재완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은 배달사고로 이어졌다. 국가 간 협상에서 필요한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것인데,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중재론이 신뢰를 잃으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드러났을 뿐이다.

　볼턴 회고록을 통해 비핵화 보다 정치적 입지 다지기에 매달리던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정은이 이런 트럼프를 이용해 톱다운 방식의 협상으로 대북제재만 걷어내고 핵을 보유하려고 보인 행태도 확인됐다. 이처럼 각자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한 결과가 비핵화는 실종되고 대북제재 문제로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위협하는 한반도 위기로 이어진 셈이다.

　이런 내막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볼턴의 폭로는 정상 간 협의를 공개하지 않는 외교의 불문율을 깨뜨린 것이며 그 결과 한미 관계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의용 실장은 어제 “볼턴 회고록은 상당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간 상황에서 이런 신뢰손상을 그냥 방치해서는 안된다. 지금 한미 양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양국의 신뢰를 회복하면서 공동의 대북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설픈 중재자론, 운전자론을 접고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제재를 바탕으로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끄는 것외엔 정도(正道)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