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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누나 떠나가다

Posted November. 17, 201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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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옥에게는 어쩐지 멜로적인 슬픔도 천박하지가 않다. 가령 그녀가 드라마 속에서 한 방울 똑 떨어뜨리는 눈물도 하나의 미학으로 승화되고 만다. 1978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강우식 시인의 김자옥론이다. 그는 이 땅의 수많은 여인들의 눈물과 비극을 느꼈다며 김자옥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탤런트 김자옥은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멜로 연기의 달인으로 1970년대 안방극장을 주름잡았다. 1975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수선화에서 첫사랑에게 배신당한 지선 역을 맡으면서 당대의 톱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1990년대 들어 대변신을 시도한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철없는 공주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아저씨 나한테 홀딱 반했지 같은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내뱉은 그는 공주병 이미지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휘감고 불치의 전염병으로 알려진 공주병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전국적으로 공주병 신드롬이 유행했다. 미나공(미안해 나 공주야) 미나자(미안해 나 자옥이야) 같은 유행어도 등장했다. 1996년 그가 발표한 공주는 외로워 앨범은 60여만 장이 팔렸다.

그는 연기자로서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뜨겁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1980년 가수 최백호 씨와 결혼한 그는 파경의 슬픔을 겪었지만 1984년 듀엣 금과 은의 멤버 오승근 씨와 재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2008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는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TV와 스크린에서 다시 건재한 모습을 보여준 그가 어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폐와 림프샘 등에 암이 전이됐다 한다.

젊은 시절에는 지고지순한 한국의 여인상으로, 중년의 나이에는 공주병에 걸린 푼수 아줌마로, 환갑을 넘긴 뒤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친근한 꽃누나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여배우. 자그마한 체구에 덧니가 살짝 보이는 미소로 폭넓게 사랑받은 친근한 스타.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되새기면서 먼 길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