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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작품 베끼고 막장 판쳐 한국 드라마 체면 말이 아니다

일작품 베끼고 막장 판쳐 한국 드라마 체면 말이 아니다

Posted September. 30, 201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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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시작은 이순재 씨가 출연한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에 방영된 1997년으로 본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 좋은 점도 있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많다.

이순재=꽃보다 할배 촬영차 스위스에 갔는데, 그곳에 온 중국 대만 관광객이 우리를 알아보더라. 요즘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는 젊은 스타의 일본 팬들이 몰려온다. 전에는 없던 변화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가 질적으로도 발전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른바 막장이 난무하고, 일본 만화와 드라마를 베낀 게 많다. 역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진룡=얼마 전 우리의 방송통신위원장 격인 중국 광전총국장과 만났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계속 선전하려면 공감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더라. 그러면서 지금처럼 자극적인 드라마는 곤란하다는 얘기를 했다. 한류가 여기서 주저앉지 않고 계속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인과 함께 나눌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막장 드라마가 쏟아지는 원인은 뭐라고 보나.

이=쪽대본이 난무한다. 촬영한 내용을 검토하지 못해 방송사고가 나기도 한다. 원고가 엉망이라도 시간이 없으니 그냥 찍는다. 촬영현장에 연출이 없어졌다. 반면 일본 NHK는 모든 드라마가 편성 전 사전제작을 한다. 작가 원고도 최소 3번 이상 수정을 거친다.

최불암=근본적으로는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다. 과거엔 각 방송사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랐는데, 이제는 공영방송조차 돈이 되는 드라마 시청률에 매달린다.

작가나 방송사로서는 시청률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과거 극작가 김희창 선생이 화면은 학교 칠판, 배우는 담임선생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만큼 드라마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좋은 인간상이나 태도가 중요하다. 인기를 얻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감동을 능가하는 인기 요소는 없다. 작품이 좋으면 시청률도 따라온다. 문제는 우리끼리의 시청률이 아니다. 이제 드라마가 문화 수출품이 됐다. 세계가 우리의 작품을 볼 텐데 체면이 말이 아닌 거다.

쪽대본이나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꽤 오랫동안 지적돼 온 폐단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유=8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표준계약서를 만들 때 방송사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표준계약서가 잘 지켜지려면 종사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불공정행위가 이뤄지면 신고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소극적인 게 아쉽다.

2000년대 초반까지 회당 1억 원이 채 안되던 지상파 미니시리즈 제작비가 10년 사이에 35배가량 뛰었다. 여기에는 일부 스타의 고액 출연료가 한몫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고액 출연료는 돌연변이다. 별안간 뛰었다. 일부 스타가 회당 억대 출연료를 받는데, 사실 제작조건을 알면 감히 그 돈을 달라고 할 수 없다. 이건 배우만 나무랄 게 아니다. 제작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좀 인기가 있으면 광고나 영화를 하려 하지 힘든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니 출연료가 부르는 게 값이 된 상황이다. 결국 방송국이 나서야 한다. 작품을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스타 대신 과감히 신인을 키워야 한다.

요새 젊은 배우를 보면서 아쉬움도 있지 않나.

최=과거에는 방송사 전속배우를 뽑다 보니 연기의 기본이나 방송의 정신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인기 많고 돈 좀 벌면 된다는 생각뿐 직업적 사명감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이=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 잘 키우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데,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아 흐지부지 끝나는 젊은 배우가 많다. 깡패 건달 역은 잘하는데, 지적 연기는 못한다. 젊은 친구들에게 영화나 드라마 끝나면 뭐하느냐. 시간 있을 때 액터스튜디오 가서 공부하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정착되다 보니 스타를 확보한 특정 기획사가 조연 캐스팅까지 좌우한다. 방송사에서 이런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