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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요덕수용소 갇힌 통영의 딸 구출하자

Posted August. 12, 20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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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죽을 수는 없지요. 한 번이라도 고향땅을 밟고 숨을 거둬도 거둬야지요.

지난달 28일 경남 통영시 서호동 통영여객선터미널 안 대합실.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 서명운동 및 북한인권 바로알기 전시회장에서 만난 신 씨의 초중학교 동창 4명은 살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기도했다. 신숙자 씨(69)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초등학교(45회)와 통영여중(9회)을 졸업한 통영의 딸이지만 기구한 운명으로 북한으로 갔다. 현재는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이날 행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영시협의회, 신 씨 구출운동에 불을 지핀 통영현대교회 방수열 담임목사(49)와 교인들이 마련했다.

중2 때 단짝이었다는 김순자 씨(68)는 얌전하고 공부 잘하던 숙자가 북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며 만일 친구가 죽었다면 두 딸만이라도 보내줘야 하지 않느냐고 울먹였다. 김 씨는 보조개에다 눈 밑에 작은 점이 있어서 더 예뻤던 친구가 일흔을 바라보면서 북한, 그것도 정치범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치를 떨었다.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이선자(68), 주길자(69), 주덕기 씨(67)는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조그만 키에 야무진 친구였다며 포스터 속 친구 얼굴을 쓰다듬었다.

신 씨는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1958년 마산간호학교로 진학해 통영 친구들과 떨어졌다. 1960년대 후반 간호사 파견 정책에 따라 독일로 갔다. 그곳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던 오길남 박사(69)를 만나 1975년 결혼했다. 슬하에 혜원(35)과 규원(33) 두 딸을 뒀다. 단란하던 가정은 1985년 남편 오 씨가 꾐에 빠지면서 풍파에 휘말렸다. 북한에 가면 교수직과 당시 교통사고로 다친 신 씨에게 최상의 진료를 보장하겠다며 북한 요원이 접근했다. 게다가 통영 출신 음악가 윤이상 씨와 재독()학자 송두율 씨 등의 적극적인 권유가 한몫을 했다. 신 씨는 북한은 믿을 수 없다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남편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고 그해 북한으로 갔다.

이들은 외부와 차단된 채 3개월간 세뇌교육을 받았다. 이후 오 박사는 대남 흑색선전 방송인 구국의 소리 방송요원으로 배치됐다. 1년이 지났을 때 상부에서 오 박사에게 독일에 유학 중인 남한 부부를 데려오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신 씨는 남편에게 우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라는 지령에 협조하지 말고 도망치라. 내 딸들이 가증스러운 범죄 공모자의 딸들이 되게 해선 안 된다. 탈출에 성공하면 우리를 구출해주고 그것이 안 될 때는 우리가 죽은 줄로 알라고 말했다. 결국 오 박사는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가족을 구출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신 씨와 두 딸은 1987년 말 정치범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 갇혔다.

탈출 후 독일에 숨어 살던 오 씨는 당시 북한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윤이상 씨를 만나 북한에 있던 가족 송환을 수차례 요청했다. 윤 씨는 1987년과 1988년 두 차례 가족 편지를 전해주기도 했다. 1991년에는 부인과 딸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와 가족사진 6장을 전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윤 씨는 오 씨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김일성 주석을 배반했으므로 가족을 인질로 잡아둘 수밖에 없다. 다시 입북해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오 씨는 1992년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에 자수한 뒤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관련기관에 간절한 호소문을 보냈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잊혀져 가던 신 씨 사연은 방 목사의 부인 소신향 씨(47) 덕분에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소 씨는 2009년 구국기도회(에스더기도운동)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관한 특강을 듣던 중 신 씨 사연을 알게 됐다. 마침 북한인권단체(세이지코리아)가 주관하는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통영에서 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와 승낙했다. 전시회 본래 슬로건에다 그런데 통영의 딸이 그곳에 있습니다는 문구를 넣어 5, 6월 전시회를 열면서 신 씨 모녀 구출운동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26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경남포럼21과 함께 이와 관련한 강연회를 열었다.

현재 통영을 중심으로 한 경남 일원에서는 신 씨 모녀 구출 서명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방 목사는 연중무휴로 이 운동을 벌여 나갈 계획이다. 현재까지 서명자는 2만6000명. 통영에서는 전체 인구(14만 명)의 11.4%인 1만6000명이 서명했다. 방 목사는 신숙자 모녀 생사확인 요청 및 구출 탄원서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통일부 등에 보내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방 목사는 북한에는 인권유린 정도가 아니라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의를 보고 분연히 일어났던 한국 젊은이들은 침묵하고 있다며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에 모든 분들이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용휘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