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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받고 핵도 개발 북기만술 계속 통할까

Posted January. 31, 201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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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최근 북한에 식량 지원 카드를 검토함에 따라 북-미 간 식량 외교 3라운드가 시작됐다. 미국은 1996년 북한에 처음 식량을 지원한 뒤 15년 동안 두 차례나 중단한 경험이 있다. 북한이 빼돌리고 큰소리치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늘 먼저 손을 내민 쪽은 북한이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초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경제 지원이 끊어지고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는 1995년 북한 전역에 수해와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간부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미국에 우는 소리를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북한 외무성은 큰물피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미국에 손을 내밀었고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6년 국제식량계획(WFP)을 통해 식량 1만9500t을 지원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를 제대로 이행하고 미군 유해 송환 등을 위한 4자회담에서 고분고분 말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지원량을 1997년 17만7000t에서 1999년 69만5000t으로 늘렸고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지원 식량을 교묘하게 전용()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원칙을 무시했다.

이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됐고 2001년 출범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식량 지원 규모를 2001년 35만 t에서 2003년 4만 t으로 삭감했다. 미국 의회는 2004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면서 더 높은 분배투명성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며 2005년 WFP 상주인력 추방 등으로 맞섰고 미국은 2006년분 원조 중단을 결정했다.

2006년 11월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실력행사를 한 북한은 2008년 다시 미국에 손을 벌렸다. 임기 말 북한 관리에 나선 부시 행정부는 전향적인 대화정책과 함께 WFP를 통한 50만 t 원조를 결정했다. 북한도 분배 모니터링 지역을 확대하고 한국어 사용 요원의 확대 등을 약속해 모두 16만9000t을 받았다.

그러나 2009년 초반부터 장거리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을 준비하며 갓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길들이기에 나선 북한은 그해 3월 분배투명성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며 지원단체들을 몰아냈다. 두 번째 파국이었다.

북한은 지난해 가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공개하고 우라늄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미국에 보여준 뒤 사실상 식량을 안 주면 우라늄 폭탄으로 3차 핵실험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선 상태다. 동맹국인 한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신석호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