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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서 난 무명배우였다

Posted March. 29, 200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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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이 사는 작은 섬 극락도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주민 전체가 피해자이며 용의자가 되는 상황. 주민들은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을 필두로 범인 추리에 나선다.

감독님이 옛날에 지인에게 들었던 얘기래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볼 수도 없어요. 관객의 몫이죠.

스릴러는 살인의 추억에 이어 두 번째.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는 속 시원하게 해결되고 왜 그런지 다 알려 주는 친절한 영화예요.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가 끔찍하다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사실을 보여주는 뉴스가 영화보다 더 세고 끔찍하지 않나요?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서 5개월간 촬영했다. 목포로 나가는 배가 이틀에 한 번 들어오는 곳. 답답하고 외로운 감정이 영화의 기운과 잘 맞아 떨어지는 곳이었다. 영화 속에서 미친 날이라고 표현되는 기상악화는 섬에서 일상적인 일이다.

낮에도 안개가 자욱해서 극락도라고 하는데 안개가 걷히면 바람이 불고, 겨우 햇빛이 나면 비가 오고. 인어공주도 우도에서 찍어서 제가 섬을 좀 아는데, 촬영에는 최악의 공간이에요. 빨리 찍고 나가자는 생각에 단합은 잘됐죠.

섬에선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제 앞에서 거, 배우가 온다는데 어딨나하면서 쓱 지나가곤 하셨죠. 함께 출연하신 최주봉 김인문 선생님이 최고 스타였어요. 숙소에 회가 배달되고. 아, 동사무소 직원 한 분이 절 알아 보셨다.

극중 캐릭터는 투철한 직업정신이 있는 인물이며 여태까지 맡은 인물 중 가장 고학력자라고. 괴물에서도 대졸 백수가 아니었느냐고 하자 이번엔 S대 의대란다. 제작사인 두 엔터테인먼트의 최두영 대표는 그에 대해 주연 배우들은 현장에서 성질도 부리고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했다.

저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요. 프로들은 자기 일만 확실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더 열심히 하게 되는 힘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거죠.

그래서일까. 현장에서 설거지를 하는 그의 모습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집에서도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그는 작년에 결혼했다) 그렇다하곤 그만. 사생활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이 길지 않다.

최근의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 물었다. 스크린 쿼터 때도 많이 참여했지만. 일단은나부터 잘하고 싶어요. 자기라도 잘해야 할 말이 있죠.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할 것 같다가 그냥 마무리해 버리는 것도 그의 스타일.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인터넷에 올릴 동영상 촬영을 위한 인사말을 부탁했다. 그는 안 하면 안 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저 그런 거 잘 못해요. 오락 프로그램도 못 나가요. 나가서 버벅거려 영화 홍보 망칠까봐. 연기하곤 달라요. 그냥 얼어요.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찍겠다며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댔다.

음, 관객들도 범인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메시지가 있어요(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떨어뜨리곤) 아아, 안나오잖아. 이거 봐.

결국 18초밖에 찍지 못한 동영상을 보면, 어쩐지 그 자연스러움이 가장 박해일답게 느껴질 거다.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