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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왕가

Posted May. 24, 20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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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거행된 왕위 계승 1순위자인 펠리페 왕세자(36)의 결혼식은 30여개국에서 온 정부대표와 100만 군중 및 12억의 시청자가 지켜본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이혼경력이 있는 앵커우먼 출신의 레티시아 왕세자비(31)는 할리우드 톱스타로 모나코 왕비가 됐던 그레이스 켈리(19291982)를 연상시킬 만한 미모였다. 앞서 노르웨이와 덴마크 왕세자의 결혼도 신부 자신과 가문의 전력이 논란이 됐으나 왕관보다 더 소중한 사랑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30여개의 왕정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유럽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산마리노, 그리고 프랑코 독재가 마감된 뒤 왕실을 부활시킨 스페인 등 11개 국가가 왕정국가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는 여왕이 통치한다. 이탈리아는 사보이왕가가 무솔리니 독재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1946년 국민투표를 통해 왕실 폐지를 결정했으나 최근 이를 후회하는 눈치고, 불가리아 유고 등 동유럽에서는 왕정복고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조선왕조는 1910년 한일병합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임금인 순종황제는 자식이 없고, 영친왕(이은)과 의친왕(이강) 등 두 이복동생만 두었다. 형인 의친왕이 1955년, 영친왕이 1970년 각각 승하함으로써 왕가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왕가의 맥()마저 끊긴 것은 아니다. 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아들 이구씨(73)가 자손은 없지만 생존해 있고, 의친왕의 13남9녀 중 9명이 국내외에 거주한다. 역사의 정통성 회복과 국민화합을 기치로 내건 대한제국 황실복원 추진위원회도 이미 활동 중이다. 물론 반발도 있다.

존재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복고적 낭만주의에 불과할까? 왕과 왕비가 경복궁과 창덕궁을 우아하게 산책하고, 외교사절들이 왕을 알현하기 위해 마차나 가마를 타고 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자유분방한 공주가 애인을 만나기 위해 궁궐의 담을 뛰어넘다 카메라에 포착되고, 왕자가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돼 곤욕을 치르는 모습도 보면서 민주주의를 만끽하면 어떨까? 서양의 로열 웨딩을 보며 하게 된 상상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