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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살인의 추억'

Posted April. 17, 200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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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릴러인가 정치영화인가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이 영화에 대해 거대한 정치 영화같다고 말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 영화의 중심이지만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봉 감독이 1980년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범인보다 이 사건에 반응하는 주변 인물과 사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영화 막바지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릴러 공식에 충실하자면 범인은 적어도 중반부에는 등장해 관객과 두뇌 게임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누가 봐도 범인이 아닌 용의자를 고문해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무려 3000명의 용의자가 수사선상에 올랐다.

봉 감독은 시대를 앞서간 살인마를 잡기엔 역부족이었던 세상을 그리려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무능이 곧 공권력의 무능이자 사회 전체의 무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80년대, 합리와 비합리가 뒤범벅된

이 영화는 시골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서울형사 서태윤(김상경)이 연쇄 강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버디 무비 형식을 띤다. 박두만의 육감수사와 서태윤의 과학수사는 초반부터 삐그덕댄다. 박두만은 범인이 잡히지 않자 무당집에 찾아가 값비싼 부적까지 사들이지만 서태윤은 서류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수사철학 아래 자료를 분석하며 사건에 접근한다. 그러나 둘 다 범인을 못잡기는 마찬가지. 어느새 둘은 경멸해 마지않던 서로를 조금씩 닮아간다.

이는 합리와 비합리가 혼재된 1980년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맞은 80년의 봄도 잠시, 전두환 정권의 등장으로 80년대 한국 사회는 한겨울로 들어선다. 이같은 주제 의식은 터널의 은유로 응집된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은 박두만이 첫 희생자의 시체를 발견한 수도관을 비춘다. 또 두만과 태윤이 유력한 용의자 현균(박해일)과 격투를 벌이는 클라이막스 대목에서도 현균은 철로 터널로 유유히 사라진다. 암흑의 공간인 터널 속에서 우리는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 영화는 80년대라는 그 어둔 터널을 우리가 어떻게 지나왔는가를 추억하는 셈이다.

# 역시! 송강호, 그렇지! 김상경

송강호는 넘버3 이후 반칙왕 조용한 가족 등에서 코믹 연기를 보여왔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그는 차가운 눈빛의 냉혈한으로 나왔지만 관객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은 송강호가 지금까지 보여온 모든 캐릭터들이 균형있게 녹아 있다. 정의보다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범인 잡기에 골몰하는 박두만은 서태윤과의 호흡 속에 종전의 가벼움을 벗고 진지하게 사건에 몰입한다. 특히 현균과의 격투 장면에서 현균의 멱살을 잡은 그가 분노와 씁쓸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대목은 압권이다. 김상경은 초반에는 송강호보다 더 부각되진 않으나 범인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미치광이처럼 변해가는 서태윤을 흠결없이 소화했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수경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