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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미 　　　　- 김정(31)


이거 봐라,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겁도 없이.
창문 너머의 흐릿한 어둠을 뚫고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번져나가는 저녁, 움푹 패인 접시에 소담스럽게 담긴 콩나물을 젓가락으로 휘휘 젖던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눈꼬리를 위로 치켜세우더니 잽싸게 두루말이 휴지를 움켜쥔다. 대여섯 마리의 개미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둘둘 만 휴지를 벽에다 대고 거세게 짓이긴다. 그의 입 속에서 씹다만 밥알들이 여전히 데굴데굴 구르는 동안 무참히 압사 당한 개미들은 곧바로 휴지통 속에 쳐 박혔다.
갑자기 개미들이 많아졌어. 당신이 과자 부스러기를 여기 저기 흘리고 다녀서 그런 것 아냐?
아내를 향하는 그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빙글빙글 돌아간다. 하지만 빙글거리는 그 눈동자와 여전히 밥알이 가득한 그의 입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밥그릇을 향해 고개를 떨어뜨리며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개미야 늘상 있어왔던걸.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듯 홀로 중얼거리는 그녀는, 손등에 내려앉은 먼지를 날려보내듯 가볍게 남편의 말을 허공으로 날린다. 아내의 말에 잠시 현기증을 느낀 그는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묵묵히 밥을 먹는 그와 그녀 사이에 딱딱거리는 젓가락 소리만이 어색한 침묵을 가파르게 거스른다.
무리를 지어 벽이나 바닥을 발발거리며 기어다니는 개미들의 모습은 그 이후에도 꽤나 빈번하게 발견되었다.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의 그는 개미들의 무리를 볼 때마다 둘둘만 휴지조각이나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앞세우며 조심스럽게 개미에게 접근해 그것들을 잔인하게 압사시켰는데, 의도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에는 분명 과시적인 측면이 있었다. 사실, 개미가 출현하는 장소는 싱크대 옆 쓰레기통 주위나 식탁을 둘러싼 벽면 등 주로 아내의 행동반경과 관련이 있었다.
그가 개미들에 대해 무조건 공격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는 소리 없이 잽싸게 움직이는 개미들의 행렬이 나타날 때면 오히려 눈을 가까이 대고 그것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투명하리 만치 연한 갈색을 띤 개미들은 그녀의 새끼손가락 정도의 압력이나 기타 다른 사소한 충격에도 배겨내지 못할 만큼 작고 연약해 보였다. 20평 남짓한 아파트를 무대로 벌이는 개미들의 바지런한 몸짓을 보면서 그녀는 때때로 우울한 심정에 빠져들기도 했다.
개미들의 출현이 잦아지고, 남편의 개미 죽이기가 반복되자 그녀는 은연중 남편의 행동에 배어있는 과시적인 속성을 조금은 눈치채게 되었고, 나름대로 개미를 박멸하기 위한 노력을 벌여 나갔다. 허전할 때마다 버릇처럼 비스킷이나 아이스크림을 입에 대는 그녀가 빵가루나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으려고 항상 커다란 쟁반을 턱 밑에 조심스럽게 갖다 대야 한다거나 군것질이 끝나자마자 물기 있는 행주로 쟁반 밖으로 떨어졌을 부스러기들을 정성스럽게 훔쳐야 하는 일들은 움직임 없는 생활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꽤 만만치 않은 노력들이었다. 그러한 성가신 노력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녀는 급기야 군것질에서 손을 떼겠다는 작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노력들은 딱히 남편을 의식한 것들은 아니었다. 개미들의 바지런한 모습을 살피던 어느 순간, 그녀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권태감을 절실히 느꼈고 그러한 느낌은 곧 스스로에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작년 가을, 10개월 동안 뱃속에 있던 태아가 마침내 그녀의 뱃속을 가르고 나왔을 때 마취약에 의식을 잃고 있었던 그녀는 그 아이가 딱딱하게 굳어있는 상태라는 것을 몰랐다. 나중에 남편의 무거운 얼굴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사흘 낮 밤을 꼬박 서럽게 통곡하였다. 집으로 퇴원하면서 그녀는 슬픔을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뽀얀 얼굴을 되찾았고 그후 다시는 아이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달콤한 것을 가까이 하는 이전에 없던 습성을 몸에 붙이게 되었다.
아침마다 남편이 등을 돌리며 베란다 창문 너머로 사라진 후, 그녀는 매일같이 가스 불에 커피 물을 올리고 비스킷이나 파이 한 조각이 가지런히 담긴 잔잔한 꽃무늬의 접시를 들고 거실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살의 따스함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그 시간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혀를 통해 그녀의 몸 곳곳으로 전해지는 달콤한 감각을 느낄 때, 그녀는 몸을 감싸고 있는 딱딱한 껍질이 벗겨져 나가면서 손 끝, 발 끝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으며 동시에 온 몸이 달콤한 감각 속으로 흠뻑 빠져 들어가는 듯한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습관적인 여유와 달콤함을 과감히 거부하기로 작정한 그녀는 남편이 등을 보이자마자 부지런히 몸을 놀리며 집안 일에 달려들었다. 서로 뒤엉킨 체 말라붙은 찌개 국물이나 먼지들로 누렇게 변색되어있던 싱크대 주변은 그녀의 정성스런 손놀림을 따라 오랜만에 새것처럼 반짝거리며 윤이 났고 욕실에는 물 때 하나 끼지 않은 투명한 빛깔이 감돌았다. 주변 환경에 민감한 그녀의 남편이 그러한 변화를 재빨리 감지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지어 보였다. 아내의 변화에 따라 그 역시 다소 수다스러워졌고, 어떤 날은 장미꽃 한 다발을 사들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의 변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비가 오고 나서 세상이 더욱 투명하게 반짝거리던 어느 날, 장식장 먼지를 훔치던 그녀는 문득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젖어있던 세상은 어느새 초가을의 환한 햇살을 받아 말간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고 베란다에 스며있던 햇살은 슬금슬금 안쪽으로 기어들더니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은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투명한 햇살에 적당히 데워진 공기가 그녀를 나른한 잠 속으로 몰아놓았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몸이 비누방울처럼 두둥실 떠올라 어느 한순간 미세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퐁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고, 그러한 나른한 소멸감은 부드럽게 씁쓸한 커피 한 잔과 입안에 촉촉이 와 닿는 달콤한 파이 한 조각의 유혹을 더욱 강렬하게 부추겼다. 햇살이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따사롭던 어느 날, 그녀는 '지겨워'라는 한마디와 함께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과감히 욕실 구석에 처박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남편이 현관 너머로 모습을 감출 때쯤이면 베란다의 작은 의자에서 햇볕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달콤한 케이크의 맛과 씁쓸한 커피 향에 깊게 파묻혔다.
그녀의 군것질이 다시 시작됨과 동시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개미들이었다. 그 동안 감쪽같이 모습을 숨겼던 그것들은 이전보다 더욱 왕성한 몸짓으로 집안 곳곳을 종횡무진 활보했다. 며칠동안 그녀의 변화에 만족해하며 때때로 실없이 미소짓던 남편은 다시 곳곳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들의 모습에 당혹해하며 둥글게 말린 휴지나 단단하고 굵은 그의 엄지손가락으로 바쁘게 개미들을 짓이겼다. 때때로 개미들을 짓이기면서 그의 눈은 아내를 힐끔거리긴 했지만 예전처럼 과자부스러기 운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처럼 아내에게 나타난 변화가 너무 빨리 사라진 것에 그는 조금 아쉬웠다.
이놈의 집구석이 낡아빠져서, 곳곳에 개미들이 진을 치고 있나봐. 틈만 보이면 어디선가 숨었다가 나타나니. 대출 받아서 우리 이사갈까? 그 정도 능력이야 나에게는 충분하다구,
아내에 대한 아쉬움을 접으며 그는 때때로 이사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는 소위 회사에서 잘 나가는 축에 끼어 있었다. 추진력이나 판단력, 일의 성취력에서 상사들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새롭게 도입된 연봉제로 입사 동기나 상사들보다 훨씬 두둑한 봉급을 받았다. 물론 그로 인해서 동기나 그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 상사들로부터 때때로 독단적이고 모험적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는 그러한 말들을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시기심이라 간주해 버리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아내는 그가 회사에서 보이는 뛰어난 능력이나 남보다 두툼한 그의 수입에 대해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혼 초부터 돈에 대한 무감각을 이유로 돈 관리를 그에게 일임한 아내는 필요할 때마다 그에게 돈을 직접 받아썼지만 돈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최소한의 소비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아내가 그의 수입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는 좀더 안락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가, 아내의 소비 규모를 늘리는 것만이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더 크게 부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기 싫어. 지금 이 집도 얼마나 넓고 휑뎅그렁하게 느껴지는데. 그리고 큰집은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아내는 그가 이사에 대한 말을 꺼낼 때마다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또박또박 말을 함으로써 단호한 태도를 표명하곤 했다. 사실, 아내의 말은 맞는 것이었다.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 속에서도 그녀는 그 공간을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녀의 손길이 미치는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고, 그녀가 망각한 무수한 것들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나뒹굴었다. 그의 집의 질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파출부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었다. 그런 아내가 지금보다 더 큰공간으로 이동한다면 그녀는 그 속에 완전히 함몰되어버릴지 모른다.

남산에 들고양이 떼 기승, 시 당국 들고양이 퇴치 작전 전개
그녀는 하단에 2단 크기로 실린 기사의 머릿제목을 유심히 보았다. 언젠가 똑 같은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때도 신문은 시 당국이 대대적으로 고양이 소탕작전에 나설 거라고 떠들었었다. 하지만 요란한 소탕 작전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눈앞에 밤늦은 시각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는 들고양이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특히 어두운 밤, 바짝 꼬리를 치켜올리고 살이 디룩디룩 찐 비대한 몸으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의 모습은 정말 질색이었다. 게다가 갓난아이의 울음을 연상시키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때때로 밤늦게 2층에 위치한 그녀의 집안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까지 뒤척여야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잠이든 날이면 그녀의 잠 속에는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수백 마리의 고양이 떼가 등장하곤 했다.
남산엔 들고양이 떼가 극성인가 봐.
저녁으로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은 남편은 저녁 내내 티브이 화면에 얼굴을 박고 앉아 리모콘을 변덕스럽게 눌러대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내용들이 반복되지만 그는 항상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티브이 앞에 앉았고 그녀는 그 옆에 앉아 한 장 한 장 꼼꼼히 신문을 읽어 내린다. 다시 채널을 돌린 남편이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돗개에다 사냥총까지 동원해서 들고양이 떼를 소탕하려는데 그게 쉽지 않은가 봐.
들고양이들 번식력이 얼마나 왕성한데 그걸 사람이 쉽게 막을 수 있겠어?
그는 그녀의 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체 습관적으로 대꾸한다.
나는 고양이가 정말 싫어. 그 탐욕스러운 눈빛하며 게다가 울음소리는 어떻구, 꼭 아기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사람 심장을 저며놓잖아.
그제야 그는 아내를 유심히 쳐다본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갓난아이의 울음과 닮았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그리고 때때로 아파트 주변을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린다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그는 고양이 울음에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피로에 찌들어 돌아온 집, 날이 어두워지면 그의 몸은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하지만 아내는 그가 깊이 잠든 어두운 밤, 고양이 울음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잠을 뒤척였을지 모른다. 아내는 여전히 신문의 글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신문을 아예 뒤집어쓰고 있다. 그 역시 다시 티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문을 넘기려는 순간, 그녀는 신문지 사이를 타고 기어가는 두 마리의 개미를 보았다.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입을 오므린 그녀는 후 ― 바람을 일으켰다. 약한 바람을 타고 한 마리의 개미가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신문의 가장자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잔뜩 부풀린 입으로 급하게 바람을 내뿜어, 가느다란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신문지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한 마리의 개미를 남편의 시선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날려보냈다. 개미가 떨어졌을 지점을 확인하려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남편의 목덜미 위로 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것의 위험성을 감지한 듯 개미의 움직임은 느리면서도 조심스러웠고, 남편은 아직 개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티브이 뉴스의 기자 얼굴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물질의 존재를 느낀 듯 남편은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내리쳤다. 이미 납작해진 개미 한 마리가 그의 손바닥에 묻어 따라왔다.
손바닥에 놓인 개미를 유심히 바라보던 남편은 티브이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고 거실 바닥과 벽 구석에서 개미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안방과 거실 사이의 문턱을 한 무리의 개미 떼가 열을 지어 기어가고 있었고, 동시에 남편의 손놀림이 부산스러워졌다. 남편은 그녀의 존재조차 잊은 듯 개미들을 잡는데 몰두했고 그 행동에 몰두해 있는 남편의 얼굴에서 그녀는 문득 유쾌한 미소를 발견했다. 그 미소는 휴지통으로 버려지는 개미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뚜렷해졌다. 하지만 남편의 행동을 비웃듯 개미들의 출현은 끝이 없었고 희극배우처럼 기계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어느새 그녀는 소파 위에서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서 자지 말고 침대에 가서 자.
소파 위에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그녀는 남편의 말에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침실로 들어갔다. 거실을 등지고 침대에 몸을 누이자 조금 전만 해도 눈꺼풀에 무겁게 드리워졌던 졸음은 벽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사이 조금씩 사라져 버렸다. 눈을 멀뚱거리며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욕실에서 쏴-하고 물소리가 들려왔다. 깔끔한 성격의 남편은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샤워를 한다. 기분 좋게 쏟아지는 물소리는 그녀의 몸을 살며시 간지럽히며 다시 옅은 잠을 재촉했다. 잠 속으로 가라앉는 그녀에게 멀리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녀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늠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우거진 수풀, 그녀의 걸음은 점차 다급해졌다. 정신없이 수풀 속을 헤치고 나아가던 그녀는 마침내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에서 가파르게 울고 있는 작고 불그스레한 갓난아이를 보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려는 순간 아이의 벌거벗은 몸뚱이는 무수한 개미 떼들로 해체돼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어나간다. 그리고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자지러지는 울음을 울며 자작나무 뒤에서 튀어나왔다. 검은 고양이는 겁에 질려있는 그녀를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보더니 냉큼 그녀를 향해 뛰어오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로 쿵 넘어졌다.
앗. 그녀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떴다. 낯익은 그녀의 방안이었다. 샤워를 끝낸 남편이 화장대 앞에 서서 로션을 바르고 있다가 그녀의 옅은 비명소리에 몸을 돌렸다.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눈을 감았다. 희미한 스킨 향을 풍기는 남편의 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스킨 향은 그의 몸을 감싸는 옅은 비누 향과 더불어 싱그러웠다.
나쁜 꿈을 꿨나보구나.
남편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맨 팔이었다.
으응, 나 좀 잘게.
그녀는 남편을 등지고 누웠다. 남편의 벌거벗은 몸이 그녀를 향해 밀착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좀 와, 이러다가 당신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잊어버리겠다.
바짝 다가온 남편이 그녀의 귓불에 더운 숨결을 토해내며 개미를 내리쳤던 그 크고 두툼한 손을 그녀의 원피스 안으로 쑥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손은 그녀의 허벅다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몸 깊숙이 파고드는 개미떼를 느끼며 다리를 움츠린다.
오늘은 안돼.
그녀는 팬티 속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손을 잡아 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남편의 손은 가슴을 향해 방향을 틀더니 브래지어 속을 파고든다. 다시 남편의 손을 잡아 거칠게 밖으로 빼낸 그녀가 발딱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 오늘은 거실에서 잘게.
그 말을 급하게 내던진 아내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들고 거실로 나갔다.
그는 아내가 침실을 나간 후에도 잠시 멍하니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샤워가 끝난 후 기분 좋게 그를 감싸고 있던 상쾌함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잠시 후 주섬주섬 옷을 걸친 그는 담배를 찾아 물었다. 아내의 단호한 손길은 여전히 생생했다. 담배 한 가치를 다 태운 그가 잠시 후 달력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거칠게 담배를 비벼 껐다. 오늘은 아내의 배란일이었다.
그는 요란하게 방문을 젖히고 거실로 갔다. 아내의 작은 몸이 소파에 옹송그리고 누워있었다. 그는 아내의 가냘픈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의 기척을 느낀 그녀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당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늙은 할망구 마냥 꼼짝 않고 살거냐구? 당신 이제 서른도 넘지 않은 나이야. 알아? 제발, 당신 나이에 맞게 우리 그냥 살자. 응, 남들처럼 아이도 낳고 아옹다옹 악다구니하며 살자구, .
그는 아내의 텅 빈, 그러나 참으로 맑아 보이는 갈색 눈동자를 뚜렷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내의 눈동자에는 어떤 동요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텅빈 눈이 축축해지는 것을 보았다. 촉촉하게 젖어가던 아내의 맑고 공허한 눈에서 기어이 주르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당신이 고통이 뭔지 알 수 있을까? 언제나 맘먹은 대로 살아온 당신이. 고통이 한번 잠식해 들어가면 누구도 그것을 견딜 수 없을 거야. 몸뚱이와 영혼은 서서히 고통으로 금이 가면서 결국은 가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난 아직도 내 몸 속에서 꿈틀거리던 것을 잊어버릴 수 없어. 나는 지금 최대한 나를 지키고 있는 거야. 그러니 나를 좀 이대로 놔줘.
그리고 그녀는 길게 흐느꼈다. 그렇게 처절하게 우는 아내의 모습은 작년 아이를 사산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이렇듯 처절하게 마치 자신이 뿌려낸 눈물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리기라도 할 작정인 듯 서글피 울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흐느낌에 당혹해 하며 그녀를 남겨 두고 침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아내를 달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예전에 그랬듯이 한바탕 울음을 터트린 후 아내는 아이에게 새살이 돋듯이 뽀얀 얼굴을 되찾을 것이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가 다시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었다.
아내의 무기력한 모습은 지난 해 가을 사산을 한 후로 더욱 뚜렷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던 편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그녀를 특징짓는 일종의 성격 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주변을 안개처럼 둘러싸고 있는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그녀만의 독특한 인상이었고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 인상이 주는 새로움과 낯설음은 그에게는 신비한 매력이었다. 그때는 왜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토록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그는 다시 새 담배 한 개피를 꺼냈다. 결국 그의 맹목적인 구애에 그녀는 미적지근하게 대응했고 그 결과 그녀는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제대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그럭저럭 생활에 적응을 해나갔다.
하지만 작년 가을 이후 그녀는 조금씩 현실을 벗어나 버리기 시작했다. 밤늦게 퇴근해서 돌아오면 그녀는 하루 종일 소파에서 웅크리고 누워 있기라도 한 듯 부스스한 표정으로 그를 맞았고 탁자에는 그녀가 먹다만 군것질 거리들의 흔적만이 어수선했다. 냉장고 구석에서는 호박과 오이가 말라 비틀어가고 있었고 기한을 넘긴 냉동식품들이 수북했다.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떤 끔찍스러운 냉담함이 배어 나왔고 때때로 그는 그 모습에 조용히 몸서리쳤다. 게다가 아내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자기 몸에 만들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하면서도 배란일이 다가오면 그녀의 몸 구석구석은 고슴도치처럼 잔뜩 가시를 세웠고, 그의 손이 닿기라도 하면 사시나무처럼 부르르 떨곤 했다. 때로 그녀는 침실에서 뛰쳐나와 혼자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밤을 새웠다.
아내의 모습을 끔찍하게 바라볼 때마다 완전히 개미들을 소탕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그는 조금씩 병적으로 집착해 들어갔다. 그리고 개미 잡기는 그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쾌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한두 마리씩 나타나는 개미를 너무나 손쉽게 꾹 꾹 눌러 죽이는 순간. 개미에 대해 느껴지는 뚜렷한 우월감이 그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평소보다 빨리 퇴근한 그는 두툼한 까만 비닐 봉지를 아내의 손에 건넸다. 봉지 속에는 분사식 강력 살충제가 들어있었지만 아내는 그것을 꺼내 보지도 않고 싱크대 구석에 처박았다. 저녁 식사는 여전히 조용히 이루어졌다. 집안을 감싸는 정적과 아내가 발산하는 끈끈한 침묵의 촉수들이 그의 팔과 다리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달라붙어 그를 깊숙이 끌어내린다. 늪 속으로 빠지는 듯한 몸을 간신히 끌어올리려고 팽팽히 긴장하고 있던 그는 벽으로부터 줄지어 기어 내려오는 개미들의 행렬을 보았다. 끝없는 행렬은 그들 앞에 놓인 거대한 위협에도 아랑곳없다는 듯 당당했다. 그 순간 그는 비참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개미들이군. 무수히 많은 수야. 여보, 조금 전 내가 사온 것 어디 있지?
팍팍하게 메마른 목소리는 서너 가닥으로 분해돼 버렸다. 하지만 아내는 식탁에 앉아 그를 조용히 쳐다볼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균형을 잃은 몸짓으로 싱크대 주변으로 다가가 아내가 검은 비닐 봉지를 넣었던 싱크대 문을 열어 젖혔다. 그것은 아래쪽 가장 깊은 곳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것을 꺼내든 그는 잠시 개미들의 무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가늠했다. 개미들은 벽에서 바닥으로 기어와 부엌 쪽으로 대오를 정비하고 있다. 개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가 살충제 통을 거머쥐고 개미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듯 난사한다. 집안은 곧 휘발성의 매캐한 냄새로 가득 찼고, 아내는 멍한 태도로 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살충제를 난사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차갑고 고요한 시간과 공간들이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그녀의 팔뚝에는 좁쌀 같은 소름들이 오소소 돋아났고 바닥에는 이내 꼼짝없이 쓰러진 무수한 개미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 중에 몇몇은 갈팡질팡 거리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마저도 참을 수 없는 듯 흩어지는 개미들을 향해 다시 살충제를 뿌린다. 다시 집안은 매캐한 휘발성 향기에 휩싸인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천천히 화장실을 향해 걸어간 그녀는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구역질을 해댔다. 구역질은 요란하게 오랫동안 계속됐다. 몸 속의 모든 것이 와르르 쏟아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 냄새를 풍기는 야릇한 것들이 변기 속으로 쏟아질수록 그녀는 자신의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벼워진 몸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쫓아온 남편이 화장실 입구에 서서 웩, 웩 구토하는 그녀의 모습을 응시했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는 임신 초, 전기 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냄새에도 화장실로 달려가던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뱃속 아이가 안전하다는 것을 그에게 확증시켜주는 의례와 같았고 그때마다 그는 아내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내의 구토는 뚜렷한 이유 없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고 그 앞에서 여지없이 널브러져 버리는 개미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던 일말의 희열은 조금씩 사그라져 버린다. 강한 휘발성 향기는 그에게 아내와의 관계가 별 문제 없이 잘 풀릴 거라는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내가 격렬하게 토해내는 시큼한 음식물 찌꺼기들과 뒤엉켜 변기 속으로 쏟아져 버린다. 마침내 변기통 속에서 얼굴을 빼낸 그녀는 세면대 앞에 서서 차가운 물 속에 깊게 얼굴을 담궜다가 물기 흐르는 얼굴로 거울을 바라본다. 젖은 머리카락들이 앞으로 길게 쏠려 그녀의 얼굴을 여러 조각으로 금그어 놓고 있다. 입구에 버티고 서있는 그는 얼굴을 닦고 나오는 아내의 좁은 어깨를 움켜쥐었다. 앙상한 뼈마디가 그의 손아귀 안에 그대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어떤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손등에 맺힌다. 그와 아내 사이에서는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침묵이 가로놓인다. 그는 그 무게에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 때 그는 아내의 작은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견딜 수 없는 거겠지? 이 구질구질한 집구석과, 달팽이처럼 그 집 속에 웅크리고 앉아 기어 나오려 하지 않는 나, 그리고 사방에서 당신의 신경을 거스르는 좁쌀 만한 개미들이. 앞만 바라보는 당신, 당신은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니까.
예상치 못한 아내의 말에 그는 머릿속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아내의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소리들의 뒤엉킴이었다. 아내에 대한 작은 분노마저 솟아오른다. 왜 그녀는 이토록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을 해 보이는 것일까? 개미에 대한 하찮은 연민일까? 아니면 그녀의 정체된 고요를 어지럽힌 자신에 대한 힐난일까? 아내의 앙상한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이 힘없이 내려앉는다. 그에게서 빠져 나온 아내는 청색 점퍼를 찾아들고 나왔다. 그리고 현관에 나가 하얀 운동화에 발을 꿴다. 그는 아내의 등뒤에다 소리쳤다.
당신의 말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당신의 눈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거지?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을까?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야. 살아있는 인간이라구. 식물인간처럼 간신히 숨만 쉬고 살아가는 당신은 정말 끔찍해. 하지만 난 당신과 달라.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야.
아내의 뒷모습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무거운 정적이 아내가 없는 집안에 내려앉았다. 그는 소파에 몸을 부린다. 머릿속이 팽이처럼 빙그르르 도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조금씩 휘발성의 살충제 향을 느끼기 시작한다.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집안은 어수선하다. 식탁 위에 먹다 만 음식들과 그 밑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개미들, 구겨진 조간신문이 서로 뒤엉켜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신을 비웃으며 집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어지럽게 뒤엉킨 집안에서 짙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아파트 현관을 나선 그녀는 차가운 밤 공기를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되새김질 해보았지만 왜 자신이 집을 나섰는지 그녀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을 덮칠 것만 같은 남편의 얼굴, 개미들의 잔해, 휘발성 향이 가득한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벤치에 몸을 부렸다. 어디로 가야하나. 지갑 안에는 푸른색 지폐 세 장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고싶은 곳이 어딘지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녀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부분의 발걸음은 속도가 빠르고 폭이 좁았다. 정장구두를 신은 남자의 발에서 운동화를 신은 젊은 사람의 발, 진한 커피색 스타킹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발. 그리고 하얀 면 스타킹에 귀엽고 까만 구두를 신은 네 개의 발. 작은 발에 꼭 맞는 앙증맞은 구두를 보는 순간, 그녀는 어깨 사이에 깊게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열살 안팎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두 명이 나란히 손잡고 껑충거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길게 땋아 내린 검은 머리타래가 경쾌하게 춤을 췄다. 자매인 듯 빛깔 고운 빨강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들 중 한 애의 키가 조금 컸다. 그녀는 멀어지는 두 여자아이의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빨간 원피스, 길게 땋아 내린 검은 머리타래.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저만치 사라지고 있는 여자아이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힘없이 주저앉은 그녀가 아이들이 사라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린다.
미라야....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녀는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가늠하며 두리번거렸다. 얼룩무늬 고양이가 아파트 벽에 몸을 붙이고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튕겨나듯 일어나 발 밑을 구르는 돌멩이 하나를 급하게 집어들었다. 그리고 고양이의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고양이의 비대하게 살찐 몸뚱이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증오가 솟아올랐다. 고양이는 자신을 주시하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여전히 가르릉 울어대며 여유 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녀는 발끝을 세우고 조용히 한 걸음씩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고양이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을 휘젓고 있는 순간, 그녀는 고양이를 겨냥하여 힘껏 돌멩이를 던졌다. 순간 그녀는 고양이의 붉은 피를 본 듯 했다. 붉은 피는 고양이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피가 흐를수록 고양이의 몸은 점점 오그라들어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고양이가 사라진 그 흥건한 핏물 위로 그녀는 우글우글 솟아 나오는 개미들의 무수한 무리를 본다. 아니, 그 개미들은 어느 순간, 20년전 질주하는 차에 무참히 깔린 빨간 원피스를 입은 꼬마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빨간 원피스는 여자아이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녀는 다시 중얼거린다.
미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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