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말끔히 개어 있었다. 겨울 햇빛이 얼어붙은 눈길을 유리처럼 반짝였다. 빙점의 냇물 위로 떨어지는 햇살처럼 눈길은 눈이 부시도록 밝았지만 무거웠다. 눈이 시렸다.
마을에 도착한 것은 어제 오후 4시께였다. 약속이 맺어진 것은 그후 불과 1시간만이었다. 실종된 사냥꾼을 찾아 겨울산을 오르는 구조대에 합류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약속이었다. 다수의 합의에 거절은 커녕 싫은 표정조차 짓지 못한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어설프기 짝이없는 구조대는 나를 포함해 모두 다섯명.
길잡이 노릇을 하는 마을 농부 한씨와 울진경찰서 원남지서에서 나온 김 순경, 도회에서 온듯 보여지는 사냥꾼 최와 송이 전부였다.
구조대는 정오가 지나도록 설산의 사부 능선을 넘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었다.
눈속에 대를 파묻은 누른빛 풀떨기들이 미세한 영하의 바람이 스칠 때마다 분답게 떨었다. 메마른 겨울 풀잎이 내는 소리는 지난 여름의 녹색 성찬을 회상하는, 비애에 잠긴 노래였다.
골짜기 어디쯤에선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굉음이 쩡! 하고 메아리쳤다. 한씨가 혀를 찼다.
“눈딩이를 몬이겨 가, 가지가 부라져내리는 소립니더.”
질펀한 사투리의 한씨는 솔잎에 쌓인 백설이 수십년을 끄떡않고 버텨온 소나무 가지를 여지없이 찢어버린다고 했다. 풀풀 날려 내려온 가벼운 눈송이가 저들끼리의 속살을 파고들며 무시무시한 무게로 굳어진 풍경이었다. 저마다 정연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소나무 가지와 눈이불은 침묵의 전쟁 중이었다.
소나무 숲이 사라지자 활엽수의 군락지가 이어졌다. 떡갈나무와 사시나무, 피나무가 얼기설기 가지를 끌어안고 겨울나기 중이었다. 바람이 휘몰아치면 마른가지에 백회처럼 붙어있던 눈가루가 한줌씩 부서져 내렸다.
능선을 할퀴는 골짜기 바람에 은빛 눈가루가 미친듯이 날뛰었다. 나는 눈가루의 발광을 바라보다말고 두 손으로 귀를 감쌌다.
산만했다. 예기치 못한 산행부터가 이상했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얼음장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일행을 뿌리치고 되돌아갈 배짱도 없었다. 최면을 걸듯 이 일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중얼댈 밖에… 속박될 이유도,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지 않은가? 눈덮인 산에 갇혀 이미 송장이 됐을 것이 뻔한 실종자를 찾아나선 이름모를 구조대와 잠시 동행했다가 하산을 하면 그것으로 이 일은 끝나리라 자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파들대던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이었다.

어제 오후 눈보라 속에 자취를 감춘 매화리를 찾아왔을 때 마을은 조난당한 사냥꾼 때문에 어수선했다.
주민들은 궂은 날씨 속에 임지를 찾아온 교사보다도 이틀 전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대처에서 들어온 두명의 사냥꾼 이야기로 몹시 시끄러웠다. 실종된 사냥꾼 일행 중 하산에 성공한 송과 최는 폭설에 갇혀 돌아오지 않고 있는 동료를 기다리다 지친 것인지 약간 멍청하고 겁먹은 얼굴이었다.
주민들은 비록 도회에서 들어온 낯선 사냥꾼이지만 구출해야 한다는데 합의하고 있었다. 이곳 지리에 밝을 뿐더러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십대 후반의 한씨와 원남지서 김 순경, 무사히 산을 내려온 또다른 두명의 사냥꾼 최와 송, 때마침 임지로 찾아온 나를 어설픈 구조대에 짜맞추고 있었다.
그들은 구조라기 보다는 눈속에 파묻혀 있을 시신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소박한 인정으로 매사를 결정하는 듯이 보였다. 조난당한 사냥꾼은 이미 ‘얼어 죽었을 것이다’ 라고 단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산골 주민들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내심 못마땅했다.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실종자를 찾아 산을 올라야 한다니! 나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서둘러 임지를 찾아온 교사일 따름 아닌가? 그러나 매화리 주민들의 결정은 묘한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매화리라는 낯선 공간 안에서 발휘되는 암묵적인 관계랄까… 그러니 당당히 이의를 제기할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겁에 질려 있기도 했거니와 정황을 분별할만한 판단력과 기운도 없었다. 거의 한나절을 버스에 시달린 여독으로 몹시 지쳐있었으니까.

“눈덮힌 산이란 거이 미궁과 같십니데이.”
한씨가 미궁을 이야기했다. 설산에 잘못 빠져들면 영영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서 갇힌 쥐처럼 고립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발버둥친다꼬 없는 길이 생기나는 것도 아이고… 그랄 때는 순순히 산을 받아들여야 합니더. 눈과 바람과 나무 속에 그냥 몸을 맡겨뿔면 출구가 보이는 기라요.”
사냥꾼 송이 한씨의 ‘미궁론’이 시덥다는 듯 쌀쌀맞게, 얼마나 올라 온 거냐고 물었다.
한씨는 높이로 치자면 중간쯤인 사부 능선 가까이 왔지만 우리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반대가 아니잖느냐고 되쏘았다. 한씨는 이제 곳 실종자들이 갇혀 있을 만한 몇 군데의 골짜기를 차례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매우 치밀했다. 산을 타며 약초를 캐는 농부답게 느긋했다. 한씨는 현재의 위치에서 남동 방향으로 이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동굴을 소개했다. 그 동굴이 오늘밤 야영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루한 산행이었다. 조난당한 사냥꾼을 찾겠다는 의욕보다는 마지못해 설산을 걸어다니는 형국이었다. 끝없는 백색의 산간지대를 걸어오는 동안 상실감은 더했다. 겨울 숲을 온통 먹어치운 광폭한 눈귀신 속에서 그들 조난당한 도회의 두 사냥꾼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능선은 바짝 마른 겨울 나무들의 수도장이었다. 발가벗은 고행의 행렬이 고슴도치의 성난 등 마냥 하늘을 향해 바짝 솟구쳐 있었다. 나무의 열병식이 유난스럽게 보인 것은 석양 때문이었다. 능선을 따라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희미한 잔광이 여인의 허리처럼 부드러운 곡선과 그 선에 박힌 수많은 나무를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동굴에 도착했을 때 능선을 따라 부침을 거듭하던 짧은 겨울 해가 산너머 낯선 세상으로 자취를 감췄다.

“영하로 떨어지먼 나뭇가지에 눈이 덮이도 속이 젖지가 않니더. 눈만 털어뿌면 잘 타이까네.”
구레나룻이 숭숭한 한씨가 마른 나뭇가지를 분지르다말고 유난히 불거저 나온 윗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말했다.
자욱하게 깔린 연기 때문에 모두들 눈을 비비며 기침을 했지만 불이 붙자 연기는 사라졌다. 동굴 입구를 빠져나가는 엷은 연기가 명주실만큼이나 가지런했다.
첫날밤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평온했다. 원시적인 동굴의 환경이 묘한 안정감을 더했다. 모닥불의 뜨거운 열기와 매콤한 연기, 텁텁한 흙냄새가 색다른 충만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닥불 주위에 자리잡은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짓눌려오는 피로에 대항할 재간이 없었다. 난감했다. 겨울 계곡을 울려대는 바람 소리가 칠흑 어둠을 종횡하며 쉬지않고 이어졌다. 기나긴 겨울밤을 사나운 골짜기 바람 소리를 베갯머리 삼아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끔찍스러웠다.
그때 김 순경이 소주를 내밀었다.
“한잔씩 하고 나면 잠이 깊을 겁니다.”
그가 베낭에서 꺼낸 작은 코펠에 투명한 소주를 가득 채워 한씨에게 건넸다. 차례로 한잔씩 돌았다.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는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부터 얼음이 녹듯이 시나브로 풀렸다. 이윽고 시끄러워졌다.
취기가 오른 사냥꾼 최가 당나귀처럼 유난히 커다란 귀를 반짝 세우더니 ‘고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느냐고, 엉뚱하게도 물었다.
“고백말이요. 고백! ”
나는 소주를 마시긴 했어도 기분이 여전히 착잡한데다가 몸까지 무거웠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의 갑작스런 고백 타령이 꼴불견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김 순경과 한씨도 마찬가지인 듯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기 감정에 지나치게 쉽게 빠져드는, 자제력 부족한 남자려니 하고 넘겼다.
그러나 최는 모두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 떠들어댔다.
“고백이란 것은 말예요, 멀쩡한 정신으로는 못해요. 왜 그런 줄 압니까? 자존심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람이 위기에 처하거나 깊은 좌절에 빠졌을 때, 혹은 죽음을 앞에 두고는 누구나가 서슴없이 고백을 하게 되지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랍니다. 처절할 만큼 눈이 멀었거나 완전히 미쳤기 때문이지요.
내가 만난 고백 이야기 가운데 최고가 무엇이었는지 말해줄까요? 영화감독 웨인 왕을 아나요? 그가 만든 영화를 얼마전 비디오로 봤는데, 그 이야기가 압권이었답니다. 대단한 이야기꾼의 영화였지요.”
최가 가쁘게 떠들어대다가 잠시 멈추고는 부스럭 부스럭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허리를 굽혀 모닥불 가장자리에서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빼들었다. 불꽃이 넘실대는 나뭇가지 끝에 담배를 들이대자 이내 뽀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는 붉은 불꽃이 벼슬처럼 오그라든 나뭇가지를 모닥불 위로 가볍게 던졌다. 당나귀 귀가 불빛에 유난히 빨갰다.
“스모크란 제목의 영화였어요. 온통 이야기 투성이인 영화였는데, ‘고백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같았답니다. 영화 속의 많은 이야기 가운데 내 가슴에 가장 그럴듯 하게 와닿은 것은 젊은 아버지와 늙은 아들의 만남이라는 다소 작위적이지만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아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죽었지요. 왜 죽었느냐고요? 만년설이 뒤덮여 있는 알프스의 깊은 산속에서 스키를 즐기다가 그만 눈사태를 만나 추락사를 당하고 말았어요.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눈 속에 파묻혀 어디론가 실려간 탓이지요. 가족들은 포기해야만 했어요. 만년설로 뒤덮인 광활한 산을 샅샅이 뒤진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지요.
세월은 흘러 흘러 그로부터 이십오년이 지난 어느날이었어요. 아들이 어른이 되어 그곳 만년설에 뒤덮인 스위스의 산으로 스키를 타러 갔답니다. 정상에 올라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긴 여정이었지요. 아들은 도중에 스키를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했어요. 언덕 위의 얼음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언덕 옆 얼음덩어리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자신의 얼굴이 투명한 얼음에 비친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하, 그건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얼음 속에 들어 있는 송장의 냉동된 얼굴이었던 거지요.
아들은 비로소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은 것이었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얼음 속에 들어있는 아버지가 이십오년 전의 젊은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고 놀랐지요. 아들은 장년의 모습인데 반해 아버지는 너무나 젊은 모습 그대로였으니까요. 장년의 아들이 청년 아버지를 보는 심경이라니… 생각해 보았어요?”
최가 다 태운 담배 꽁초를 손가락 끝으로 툭 튕겨 모닥불 속으로 던졌다.
이십오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내린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고작 담배 한 개비를 피울만큼의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랄까. 최는 당나귀 귀를 쭈볏 세우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영화 스모크의 실체는 그러나 시공을 깨트린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고백입니다.”
최는 고백이라고 강조했다. 위선과 위악,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이 이 영화가 의도했던 것이라고 했다. 감추어진 부끄러움을 담배 연기로 가리려 하지만 끝내 감출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그러나 모두들 아직은, 최의 고백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관심 밖이었다. 최 역시 떠벌이던 이야기로 피곤해졌는지 침낭 속에 몸을 뉘었다.

침낭 속에 들어가 넘실대는 모닥불의 푸른 불꽃과 검은 숯덩이, 시뻘건 불티의 비행을 바라보다가 문득 눈 위의 발자국을 떠올렸다.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성난 골짜기 바람이 할퀴고 가면 삽시간에 지워지고말 발자국에 그토록 애착을 가져 온 것은 왜일까? 온 종일 솔수펑이 산을 올라오면서 그나마 두려움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눈 위에 찍혀난 발자국 때문이 아니었던가? 한씨나 김 순경보다도 뒤에 남겨놓은 흔적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끝내 떨쳐내지를 못했으니….
한씨와 김 순경 그리고 두 사냥꾼은 어른거리는 불 그림자를 뒤로 한채 벌써 잠들어 있었다.
저들과 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음이 술렁였다. 잠이 오지 않았다. 지근거리는 머리로 어젯밤 산골마을에 도착하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대구 외곽의 눅눅했던 스카이 호텔과 폭설을 뚫고 달리던 시외버스, 함박눈에 가려 숨어있던 매화리, 낡은 벽과 흰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창틀, 퀴퀴한 냄새가 가득 고인 마을회관, 고령의 낯설기만한 산사람들, 예기치 않은 사냥꾼의 조난과 그들을 찾아나서기 까지의 짧지만 아득한 일들이 새록새록 스쳐갔다.
놀라운 것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둘째날 밤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해발 육백미터가 훨씬 넘는 경북 동해안 지방의 이름도 모르는 태백산맥 협곡 사이에서 새우잠을 자게될 줄이야… 믿겨지지가 않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게 꿈인가? 의심도 품어보지만 기분만 우울해질 뿐이었다. 동굴 밖 설귀(雪鬼)가 활개치는 푸른 겨울 숲속을 유영하는 영하의 바람 소리가 사나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쓸려다니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2

이튿날 아침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제서야 산의 실체, 아니 감추어진 설산의 광기를 믿기 시작했다. 미동도 하지않고 서 있는 숲과 골짜기의 침묵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무시무시한 뇌관이었다. 침묵은 외형일 뿐, 그 안에는 넘쳐나는 힘이 소리없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었다. 동굴을 출발해 협곡 사이를 살피며 눈속에 파묻혀 있을 실종자의 시신을 찾던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쳤는데, 그것은 뜻밖도 멧돼지였다.
멧돼지라는 말에 눈을 부라린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티브이나 책을 통해 보아왔던 멧돼지가 나타난 것이었다. 원시의 생명력이 넘쳐나는 야생 멧돼지와 맞닿게 됐다는 것부터가 두려움과 호기심을 발산시켜 몹시 긴장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엽총을 갖고오는 건데… 번거로울 것 같아서 이장댁에 두고 왔지 뭐요.”
사냥꾼 최가 총 이야기를 꺼냈다.
“총이 있다고 해결될 것 같수? ”
김 순경이 어이없다는 듯 쏘아부쳤다.
우리는 화전민이 경작을 했던 산간지대의 비스듬히 경사가 진 넓은 경작지에 멈춰 서서 김 순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마른 풀대가 뾰족뾰족 고개를 내민 눈밭 너머 사오십미터쯤 떨어진 곳에 어슬렁대는 멧돼지들이 보였다.
한씨는 대여섯마리의 멧돼지가 버티고 있는 자리가 골짜기를 이어주는 길목이라고 했다.
“저기가 바로 목입니더. 저쪽 밭떼기를 넘어가야만이 다른 골째기로 드갈 수 있심더. 마, 일종의 통로라꼬 보면 될끼라요. 아이머 새로 산을 내려가가 다런 길로 돌아서 올라갈 수 밖에 없심더. 조금 더 기다려 봅시더. 저놈들도 목을 지내갈라꼬 움직이는 거 같으이까네… 지금으로서는 피차 부대끼지 않기를 빌 수 밖에 없십니더.”
한씨는 버려진 경작지를 곧장 올라가는 길을 포기하자고 했다. 밭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면 멧돼지 무리와 자연스럽게 비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씨의 계산일 뿐이었다. 김 순경이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멧돼지가 내려와요!”
멧돼지는 우리가 서 있는 밭 아랫 쪽 골짜기 사이의 넉넉한 평지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자리를 맴돌며 어슬렁대던 멧돼지 무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소름이 끼쳤다. 설마 덤벼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의적 판단은 산산조각이 났다. 무엇하나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한씨가 멧돼지의 공격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며칠째 배를 곯았을지도 모릅니더. 몹시 예민해져서, 공격해 올 수도 있심니더. 절대로 자극을 줄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되이까네 찍소리 말고 가만 있어보이소.”
그러나 한씨 말대로 그냥 서 있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멧돼지들의 움직임이 확연했다. 선두에 선 흑갈색의 멧돼지가 꽤액! 하고 한차례 소리를 내지르면서 눈밭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수마리의 멧돼지가 뒤따랐다.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흩어져요! 흩어져!”
한씨가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 속에서 직립보행해야 하는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나는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아니, 달리는 것이 아니라 도망칠 수가 없었다. 눈 속에 빠져드는 발이 한없이 깊고 무거웠다. 지상에서의 질주와는 달리 폭설에 잠긴 산간지대, 화전민이 버리고 간 경작지 위를 달린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멧돼지의 질주는 서슴없었고, 거칠었다. 가속도가 붙은 바위 덩어리의 무제한 속도, 산골짜기를 굴러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폭력성의 광기가 느껴졌다.
나는 끝장이라고 여겼다. 서너걸음을 겨우 떼어놓을 동안 멧돼지는 땅을 뒤흔들며 달려 내려왔다. 하필이면 방패막이가 될 나무 하나 없는 화전민들이 버려둔 밭이라니… 나는 필사적으로 멧돼지 무리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꼬꾸라지고 일어서기를 거듭하다가 멧돼지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이상 도망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눈 속에 파묻혀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의 한계이자 마지막이라니…
‘죄의 댓가를… 받는구나…’
이제 곧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식은땀을 흘리고, 머리털이 주뼛서던 순간 내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이었다.
성난 멧돼지의 발에 짓밟히거나 팔뚝을 물어뜯겨 이제 곧, 졸지에 능지로 죽게됐다는 절망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그 전율이 위선과 창피로 가득찼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 것이었다. 두손으로 머리를 꽉 감싸안은 채 눈을 질근 감았다.

정신을 차린 것은 적요 때문이었다.
사방이 너무 고요했다. 산새 한마리가, 너무나 가볍고 맑은 소리를 내어 지저귀는 이름모를 산새가, 머리 위로 날아갔다. 밭 아래쪽 산간으로 내려간 멧돼지 무리가 산비탈 따라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멧돼지들의 흉포에 소리없이 흩어져 날아가는 눈부스러기들의 광희가 장관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조금전 우리가 피해나왔던 밭 한 복판을 쏜살처럼 지나간 것이었다.
멧돼지의 광란이 휩쓸고난 뒤에 찾아온 적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무서우리만큼 지독한 적요는 이내 깨지고야 말았다.
“사고다!”
기분나쁜 외침이었다. 또렷한 메아리가 되어 사고다, 사고다, 사고다 하고 연이어 울렸다. 김 순경이 눈을 헤치며 밭 가장자리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한씨가 비탈에 떨어졌어요!”
눈밭을 달려가는 김 순경의 제복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였다.
한씨가 보이지 않았다. 밭 끝자락 너머의 비탈로 미끄러져 내린 흔적이 역력했다. 김 순경이 비탈에 서 있는 뽕나무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아랫쪽을 향해 “한씨! 한씨!”하고 불렀다.
“온통 눈에 덮혀 속은 게 확실해요. 누군들 이곳이 벼랑인줄 알았겠어요? 한씨! 하안씨이!”
김 순경이 뽕나무에 매달려 외쳤다.
눈에 감추어진 벼랑이 얼마나 깊은지,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 그 아래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논의했지만 공론에 불과했다.
서둘러 구조 장비를 챙겼다. 김 순경이 송의 배낭에 들어 있던 로프를 꺼내 풀었다. 뽕나무 밑둥에 단단히 부여맨 뒤 로프를 한차례 잡아당기자 나뭇가지에서 튕겨나온 눈부스러기가 유난히 반짝이며 쏟아져 내렸다. 김 순경이 로프를 넉넉히 잡아 허리에 감으면서 후유!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벼랑 아래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려놓는 순간 눈바닥이 푹, 살얼음 깨지듯 꺼지면서 로프에 매달린 몸이 허공에 붕 뜨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곳은 벼랑의 텅빈 허공이었다. 폭설과 강풍이 며칠 동안 쉬지않고 이어지면서 사막의 모래 언덕처럼 감쪽같이 벼랑 끝 허공을 덮어버린 것이었다.
“조심해요! 사람 잡겄네.”
송이 돗수가 높은 안경을 한차례 콧등 위로 밀어올리며 놀란 듯 일렀다.
김 순경이 로프에 매달려 벼랑 아랫쪽으로 내려간 후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깊은 우물 속으로 내려간 두레박의 기별처럼, 한참이 지나서야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이고, 한씨! 하안-씨-이! ”
너무 놀란 나머지 탄식에 가까운 김 순경였다.
한씨가 로프에 매어져 위로 올라왔을 때의 모습이라니! 무성한 구레나룻으로 얼굴 표정은 가리워져 있었지만 두 눈은 고통으로 꽉 잠겨 있었다. 온몸을 후들후들 떨기까지 했다. 김 순경이 한씨의 어깨를 붙들고“정신을 차려요!”하고 가볍게 흔드는 순간 머리가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머리를 떨군 한씨의 뒤통수를 보았다. 한씨는 마치, 자기의 비참한 상흔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우리 앞에 머리를 떨군채 뒤통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쏟아져 내린 핏물이 뒷목과 점퍼 목둘레를 흥건히, 검붉게 적셔놓고 있었다. 그곳에서 뜨거운 김이,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히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무섭게 올라오고 있었다. 한씨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위기에 봉착하자 의외로 침착해졌다. 최가 배낭에서 한 장의 손수건을 꺼내 한씨의 으깨진 뒤통수를 싸맸지만 이내 핏물에 젖고 말았다.
“뒤통수가 완전히 부서졌어요. 서두릅시다. 죽게될지도 몰라요. 출혈이 심한데다가 의식까지 없잖아요?”
김 순경이 한씨의 납같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또다시 어물어물 하다가는 하산을 하기도 전에 날이 어두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산세와 지형을 환히 꿰고 있던 한씨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돋보기 안경의 송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낭패로군요. 길잡이가 사고를 당하다니… 난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전혀 분간할 수가 없어요. 동서남북조차 모르겠다니까요.”
내가 다그치듯 말했다.
“서둘러 내려가야 해요. 문제는 동굴 다음부터예요. 밤새 내린 눈으로 발자국이 다 묻혀버렸으니까요. 우리가 그 길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젭니다. 모두가 러셀에도 서툴고 산길은 더더구나 모르고….”
정오가 지나 있었다. 우리는 한씨를 효율적으로 운반하기 위해서 들것을 만들기로 했다. 두개의 굵다란 나뭇가지를 구해와서는 그 사이에 칡덩굴을 얽어맸다. 들것에 한씨를 옮긴 뒤 송과 내가 나란히 들었다.
한씨를 대신해 김 순경이 앞장 섰다. 그는 산길을 걸으면서 내내 손목시계와 나침반을 번갈아가며 들여다 보았다. 그것들에게 해답이 있기라도 한듯 틈만 나면 꺼내드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나절 뒤 날이 어둡기 전에 산을 벗어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모두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확실할 뿐더러 석연치 않은 그 사실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오후 4시가 가까와져서야 동굴로 되돌아왔다. 이곳부터가 문제였다. 지난밤 내린 눈이 우리의 흔적을 감추고 보란듯 처녀설을 펼쳐놓고 있었다. 모두가 동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부드러운 굴곡의 처녀설을 보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은 처녀설을 바라보다 말고 내가 나섰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판국에 망설일 게 뭡니까! 설사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서둘러 내려가야지요. 이대로 지체했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쩔 겁니까? ”
송이 내 말을 받았다.
“어제 한나절 동안 쉬지않고 올라 온 산길을 지금 내려간다는 것은 말도 안돼요. 아무리 내려가는 길이라 해도 우리는 그 길조차 잘 모르잖아요? 더욱이 해가 기울고 있는데다가 밤새 내린 눈으로 발자국마저 지워져버렸단 말입니다. 도중에 길이라도 잃어버리는 날에는 어쩔랍니까. 한씨는 고사하고 우리 모두가 조난될지도 몰라요.”
서쪽 능선을 따라 잔뜩 기울어진 해가 벌써 포도빛으로 짙어지면서 차가운 저녁기운을 내뿜었다. 의식을 잃은 채 들것에 실려 있는 한씨가 마음에 걸렸다. 생과 사를 다투는 중환자를 곁에 두고도 꼼짝달싹할 수 없는, 너무나 명명백백한 현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산속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한씨의 생명조차 젖히고 있다는 사실이 께름칙했다. 절망적인 기로에 놓인 우리는 한씨의 위기보다 자신들의 문제에 더욱 민감해져 있었다. 한씨의 중상은 눈가루에 덮혀버린 인적없는 산길처럼 쓸쓸히 파묻혀 가고 있었다.
나는 기우는 저녁 해를 따라 물들고 있는 석양을 바라보다 말고 혀를 찼다. 매화리 분교를 찾아올 때 비장하기까지 했던 각오가 한순간에 눈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양심과 도덕의 문제로 반성하고 회개했던 심정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자 모두 부질없이 녹아내리고 말았다. 산간 마을을 향해 달려오면서 각오했던 뼈를 깎는 결심, ‘꼭 자살 하리라’던 비장함이 이처럼 단숨에 깨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저 산이 서쪽, 그리고 우리가 들어가는 동굴은 동쪽…”하고 방향 감각을 숙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