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오후였다.
동아일보 기자시험의 최종발표를 하루 앞둔 날, 설마 내가 될까 싶은 생각에 깨끗하게 포기하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읽던 책을 집어들었지만 의미는 머리 속에 들어오지도 않은 채 자꾸 전화기에 눈이 갔다.
붙었다면 조만간 연락이 올 텐데도 침묵하는 전화기.
그렇게 몇 십 분이 흘러 예민해졌던 신경이 체념으로 인해 풀려 버릴 무렵 난 합격소식을 알려 주시는
인사부장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주간의 인턴기자 시험을 포함, 총 5개의 코스를 모두 통과한 후 얻어낸 값진 결실이었다.
특히 2주간의 인턴기간 동안 만족스럽지 못한 답안들을 제출하며 개인적인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터라 합격소식은
더욱 큰 기쁨과 감사로 다가왔다.
올해 초 시작해 언론사를 준비한 지 6개월이 되어갈 무렵, 동아일보에 원서를 넣을 때만 해도 합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작년에 다녀온 영어 연수 때문에 생긴 8개월간의 공백 때문에 시사적인 흐름에 대한
나의 이해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고 언론사 스터디도 남들보다는 늦게 시작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동안 머리 속에 쑤셔박은 단편적인 시사상식들이 나의 얄팍한 지식수준을 커버해 줄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동아일보는 암기 위주의 상식과 국어를 시험과목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므로 논술, 작문과 영어로만 필기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과정에서 새삼 느낀 것은 영어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이다.
1차 서류 전형에 기재해야 하는 영어성적과 영어 필기 시험 이외에도 국제부의 영문번역 기사작성, 영어토론,
영어로 자기소개하기 등 많은 분야에서 영어능력을 검증 받았다.
영어 필기 시험이나 국제부 기사작성은 대부분 외신기사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한정된 시간 내에 많은 양의 글을 읽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잡아내어 매끄럽고 논리적인 연결구조를 가진
국문기사로 재구성해야 했다.
이 분야에선 1년 정도 매일 외국신문을 읽은 경험이 효과가 있었다.
한국인이 작성한 영문기사보다는 다양한 어휘와 표현 등 좋은 문장을 많이 담고 있는 외국인들의 기사나 발췌사설,
에세이 등에서 얻은 것이 많다.
처음에는 서 너개 정도 밖에 소화하지 못하던 칼럼들도 익숙해지면 몇 달 뒤에는 동일한 시간 내에 훨씬 많은
양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고급문장, 시사적인 내용을 담은 문장에 익숙해지는 만큼 영어작문에도 도움이 된다.
자기 소개나 영어토론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발음이 그다지 잘 굴러가지 못할지라도, 때로는 속도가 좀 느리더라도 머뭇거림 없이 정확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를 위해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주제를 놓고 혼자 발표해 보는 연습을 하거나 좋은 문장들은 큰 소리로 몇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어토론 시험에서는 다른 사람의 발표를 모두 이해해야 하므로 청취 능력 또한 중요하다.
우리 조는 토론의 주제가 [Euthanasia](안락사)였는데 처음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Youth In Asia]라고 생각,
혼자서 열심히 '20세기 동북아 청년들의 역할' 등을 고민하다가 크게 당황한 적도 있다.
청취 연습은 좋아하는 외국 TV프로그램을 정해 놓고 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본 결과 스토리가 궁금해서라도 더 열심히 듣게 된 것이다.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개월간 외국 어학연수를 갔다 왔기 때문에 그나마 어학부분에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어학실력을 결정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캐나다에 있을 때, 몇 개월씩 그 곳에 체류하면서도 스스로 공부를 지속하지 않아 기본적인 회화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았다.
결국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어학능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을 통해 얻은 영어실력 덕분에 동아일보 시험뿐만이 아니라 해외 어디를
나가서도 당당할 수 있었고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과 뜻깊은 만남, 대화들을 나눌 수 있었다.
영어실력은 합격만을 위해서가 아닌, 기자의 자질을 발휘하기 위한 탄탄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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