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2000년 2월 졸업 예정.
합격자 발표가 난 지 벌써 40여 일이 지났다.
더웠던 8월, 2주 동안 치뤄낸 인턴 기간이 참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인턴 기간 2주 동안 매우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이런 집중력과 여유를 항상 균형있게 유지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인턴 생활을 하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모습의 삶을 접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택한 기자라는 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입사하기 위해 한 일이라곤 동아일보를 약 6개월 동안 구독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흔히 말하는 '언론고시'를 위한 스터디 준비를 막 시작하려던 참에 동아일보에서 모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운만 작용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험이 언론사에 들어오기 위해 내가 해 온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공부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한 때가 바로 '인턴'기간이었다.
인턴 기간에 한 일은 결국 신문 하나를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비록 편집까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문 1면에서 마지막 면까지 들어갈 모든 기사를 2주 동안 하나씩 써내야 했다.
짧게는 원고지 3장에서 길게는 8장까지의 기사를 하루에 2-3개씩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불필요한 수식어들과 복잡한 문장구조를 피하고 간결하게 써야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정작 원고지 위에는 네다섯 줄이 넘어가는 문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기사는 꼭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주문은 인턴 하루하루가 끝날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화두였다.
게다가 문장에는 향기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주어진 시간 안에 기사를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분야에 대한 기사를 쓸 때엔 더욱 그랬다.
그럴수록 긴장은 더해가고 기사는 써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대로 집중을 잘 했던 것 같다.
아침 10시에 울리던 동아일보 사가(社歌)가 인턴 첫 날에는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인턴 기간이 끝날 때 쯤에는 오늘 그 노래가 들렸던가 하는 정도였다.
또, 어느 정도의 여유도 필요하다.
합격자 8명 모두 인턴 생활을 하면서 조급해 하거나 너무 긴장한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떨어진 사람은 모두 조급해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유있는 태도가 기사를 좀 더 잘 쓰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인턴 2주 동안에 갑자기 글솜씨가 늘거나 줄지는 않는다.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글솜씨를 어떻게 발휘하냐의 문제다.
집중력과 여유가 있다면 더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데 주어진 2-3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껴질 때는 어쩔 수 없이 풀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신발 양말을 모두 벗고 맨발로 있었다.
그러고도 잘 풀리지 않으면 책상에 엎드려서 충정로 사옥 12층 창문 밖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파란 하늘과 구름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글의 구성을 짜기도 했다.
내 옆 줄에 앉아 있던 사람도 나처럼 책상을 벗삼아 엎드려 있곤 했는데 그러다가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기도 했다.
이렇게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마감 시간이 코앞에 닥쳐오면 허겁지겁 원고지를 메워갔다.
나중에 냄새를 풍긴다고 꾸중을 듣기는 했지만, 맨발이 되는 것은 긴장을 풀고 집중을 하려는 안간힘의 표현이었다.
더욱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인턴 기간 2주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를 배우기에는 그리 짧지만은 않다.
인턴을 시작하는 전 주의 예비 모임에서 담당 부장님은 비록 떨어지더라도 뭔가를 얻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을 믿는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