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2000년 2월 졸업 예정.
미국 MIT대 경제학부 1년 수학
동아일보 시험이 있기 전까지 내가 한 일들 중에는, 신문사 시험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한 일과
신문사 시험과 관계없이 한 일이 있다.
상투적인 말은 상투적인 말이기 때문에 와닿지 않지만, 그것이 상투적인 말이 된 것은 아마도 어느 정도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신문사 준비'로서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성의있는 자세'는 그저 나에게 흘러가는 것들을 글의 자원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신문사 시험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후부터 스터디팀을 구성하여 글쓰기 연습을 했다.
우선 논술과 작문 스터디를 하면서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내가 어느샌가 모니터와 키보드가 아니라,
종이와 펜을 가지고서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나의 글쓰기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교수에게 보이고,
다른 대학생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정해진 지면에 간결하게, 쉬운 용어로, 그러면서도 필요한 내용을 담는 연습을 위해서 친구가 권해준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원고지에 글을 쓰게 되면 한단어 한단어를 쓸때마다 바로바로 줄이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되니,
글을 아끼고 단어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신문의 사설을 베끼는 것은 사실 오래하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쓰기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글쓰기를 익힐 수 있었다는 것 보다는,
이제까지 내가 써왔던 방식에 어떠한 것들이 잘못되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 커다란 성과였던 것 같다.
좋은 결과를 얻는 데에 어느 쪽이 더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합격한 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선뜻 무엇을 했노라고 이야기 하기가 참 어렵다.
'글은 경험을 반영한다'라는 상투적인 말에 그 진부함 만큼이나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논술, 작문 시험과
인턴 과정 중의 글쓰기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동아리나 학교 외 활동에서,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그리고 나의 자잘한 일상에서
경험하고 고민했던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글쓰기 시험에 임했다.
줄잡아 열가지가 넘는 글쓰기 시험에서, 7살 짜리 조카, 가족 모임을 하기 좋은 장소, 컴퓨터, 예전에 읽은
소설책의 내용, 야학 교사 시절에 학생과 나누었던 잡담, 여성학 세미나 등과 같은 것이 이러저러한 형태로
녹아 들어갔다.
한 예로, 기획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취학전 유치원 교육에 대하여 썼는데, 현재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조카에 대해 예전에 언니가 했던 이야기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어휴, 언니 없었으면 큰일날뻔 했군' 하는 안도와 함께, 내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다.
23년간 살면서 겪고, 듣고, 생각한 것들이 나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있지만 반드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던 것들을 어느 순간 포착하여 글로 드러나게 하는 일.
이러한 과정에는 경험의 많고 적음 보다도, 내가 지내온 일들, 내가 살고 있는 사회, 글쓰기 시험이라는 상황 등
모두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기술적인 테크닉 훈련 만으로 '문장력'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또 이렇게도 말했다.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애정이 있어야 남들이 안보는 것도 보이고, 남들과 다른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앞으로 기자로서 생활해 나가는 데에도 정말 담아 두어야 할 소중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글쓰는 직업을 택하는데 그다지 큰 두려움은 없었다.
여러개의 레포트, 대학에서 몇번의 자료집을 내본 경험, 웹집을 내는 모임에 참가하면서 글을 쓰고
번역을 해본 것들을 통해 글쓰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제대로된 글쓰기'는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글을 써야 하는데 내앞에 흰종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생소했다.
대학 들어온 이후 글은 늘 컴퓨터로 써왔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컴퓨터적 인간'이 되어, 타자치는 속도에 맞추어 생각하기, 난잡하게 쓰기 시작하기
(나중에 오리기, 붙이기 기능으로 정리가 가능하니까), 만연체로 쓰기 (원고지 서너줄이어도 A4로는
한줄밖에 안되니까 문장의 길이에 대해 감이 없어진다) 등이 완전히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학교에서 리포트를 쓸 때 되도록 어려운 말로 길게 늘여쓰는 연습을 해왔고, 자료집에는 온갖 어색한 용어들로
도배를 해왔던 것이다.
그저 '있어 보이기 위한' 글쓰기, 어깨힘만 잔뜩 들어간 글쓰기.
몇 년간 습관이 되어버린 이러한 방식을 교정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아직도 거의 교정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문의 사설을 하루에 한 개씩 그대로 베끼는 것이었다.
원고지 10장 이내, A4용지로는 한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이다.
레포트를 쓴다면 서론의 절반도 안되는 지면, 웬만하면 컴퓨터로 20-30분 동안에 후다닥 써버렸을 정도의 양.
이것을 정성을 들여 한단어 한단어마다 고민하며 쓰는 연습은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한 서너달 꾸준히 하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했지만 나는 3주를 채 하지 못하였다.
효과는 아주 확신할 순 없지만, 글을 매우 꼼꼼히 읽게 되고, 좋은 표현을 눈여겨 보게 되므로
헛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또 잘 쓴글과 못쓴 글을 어느 정도 판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은 앞으로의 과정에서 아직 나에게 채워지지 않은 것들을 채우는 데에, 끊임없이 확인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