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10월5일 차기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 받은 국제부 한기흥 기자입니다.
저는 61년 생으로 만 38세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각 부분에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이른 바 '386' 세대이지요.
특파원으로 선발되는 과정에서 소정의 영어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연수를 갈 당시 사실 저는 여러 모로 재충전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은 기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선망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동아일보 기자로서 제가 여전히 품고 있는 좋은 언론인의 꿈은 그 같은 고민을 통해 단련됐기 때문에 더욱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제가 취재한 인물 사건 사고 현상 등은 어떤 의미에서든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과 아들은 옛날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 소년동아일보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88년4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에서 4년 7개월, 정치부에서 6년11개월을 근무하고 특파원 발령을 받아 국제부로 소속 부서를 옮겼습니다.
사회부에선 경찰 검찰 법원을, 정치부에선 여야 정당과 국회, 국무총리실 감사원 통일부 외무부를 출입했습니다.
수습기자 시절 서울의 한쪽 구석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를 취재하는 것에서 시작, 전반적인 국내 정치 사회문제에 이어 남북 문제, 국제 문제로 취재 영역을 단계적으로 넓혀 온 셈입니다.
그와 병행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제 인식의 지평도 넓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사 11년6개월 만에 워싱턴 특파원이 됐지만 그 동안 대체로 40대 차장급이 특파원을 맡아왔던 관례에 비춰보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중요한 일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회사에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감안, 가급적 젊은 기자가 특파원을 맡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리고 제게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카투사로 미군부대에서 근무한 뒤 동아일보 입사 전 한 영자신문사에서 기자로 2년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1년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주제로 연수를 했기 때문에 영어와 미국 사회에 대해 그런 대로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있는 편입니다.
이 같은 경력 중 제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96년 회사의 전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진 미국 연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쁜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얄팍한 지식이 모두 고갈이 된 것 같은 생각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심신이 상당히 지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런 저에게 1년간 전혀 근무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와 일, 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습니다.
회사가 월급은 물론, 연수비용까지 모두 부담하는 파격적인 지원이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절로 남을 것 같은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사람을 키워주려는 회사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특파원이 된 기쁨보다는 동아일보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이 더 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소년동아일보 독자로 처음 동아와 인연을 맺었던 저는 유신 시절 정부의 광고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론직필을 포기하지 않았던 동아일보를 보며 나중에 커서 동아일보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왔습니다.
물론 입사 당시 품었던 청운의 꿈을 원형 그대로 간직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있기 마련이었고,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고 좌절했던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상은 순수한 그 자체로 있을 때 보다는 현실 속에서 적절히 검증되고 다듬어지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는 기자로서 객관적인 관찰자이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론 기사를 통해 취재 대상에 영향을 미친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에 결국 교호작용을 통해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해 온 셈입니다.
'하늘 빛 고운 눈망울'을 갖고 있던 어린 소년시절부터 한국 최고의 신문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동아일보의 기자로서 그 같은 일을 해왔다는 것이 제게는 행복입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니까요.
그 애들은 중학생쯤 되면 동아일보를 보게 될 것 입니다.
저는 소년동아일보를 열심히 읽는 제 아이들을 보면 그 애들은 과연 어떤 꿈을 키우고 있을 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동아와 함께 성장할 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보다 좋은 신문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동아는 저와 제 가족에게 꿈이자 그 꿈이 영글어 가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