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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호/2002.09.26
 

‘카파라치’가 귀성길 당신 노린다

도심 교차로서 고속도로 대거 진출… 갓길통행, 전용차로-신호위반 절대 금물

택시운전사 김명철씨(44)는 회사 내에서 ‘모범운전자’로 통한다. 중앙선침범과 불법유턴, 신호위반을 밥 먹듯 하던 그가 개과천선한 것은 최근 30여만원의 범칙금을 내면서부터. ‘카파라치’가 한 달 동안 김씨의 위반 장면을 네 차례나 촬영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카파라치의 렌즈에 걸린 곳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양천구 목동, 강북구 수유동, 강남구 청담동 등 서울 전역. 그는 “동료 기사들 중에 카파라치에게 한 번 이상 안 ‘당해’본 사람이 없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카파라치가 분노한 택시기사들에게 맞아 식물인간이 됐다’는 기사가 조만간 신문에 실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철현씨(3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도 김씨와 비슷한 경우. 20여 차례나 카파라치에게 적발된 이씨는 적신호시엔 횡단보도가 없는 사거리에서조차 우회전을 하지 않는다. 카파라치 덕에 모범운전자가 된 셈이다. 이씨는 카파라치에게 고속도로에서 전용차선위반으로 하루에 3장을 찍힌 적도 있고, 같은 장소에서 수개월에 걸쳐 불법유턴하는 모습을 다섯 차례나 촬영당하기도 했다. 그는 “도로 시스템상 신호와 차선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많다”며 “사고 예방이 신고포상금제의 목적이라면 운전자가 분명하게 보이는 위치에서 촬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열변을 토했다.

대도시의 교차로와 고속도로를 카파라치들이 점령했다. 경찰에 따르면 교통법규위반 신고보상제 신고 건수가 지난해 3월 시행 이후 7월 말까지 400만건을 넘어섰고 보상금 지급액도 100억원을 돌파했다. 교통법규위반 차량을 전문적으로 찍는 카파라치의 수는 전국적으로 25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만 해도 7월까지 교통법규위반 신고 건수는 모두 130만2046건, 신고포상금은 28억6158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9000여만원의 포상금을 타낸 카파라치도 있을 정도다.

전국적으로 2500여명 활동

카파라치가 특히 득실대는 곳은 서울 강남구. 강남경찰서 교통계엔 매일 10~30명씩 몰려와 10여장에서 수백장에 이르는 사진을 내려놓고 간다. 카메라와 망원렌즈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카파라치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은 강남경찰서 관할에만 100여명에 이른다. 한 달 평균 이 경찰서에 접수되는 신고 건수는 2만여건. 경찰 관계자는 “카파라치가 특히 활개치는 지역은 강남구 논현동 도산사거리, 역삼동 선능역사거리, 신사동 동호대교 남단사거리, 한남대교 남단 미성아파트 인근”이라며 “강남의 모든 교차로 주변의 인도 혹은 차도에서 1시간 이상 주차하고 있는 짙은 색으로 선탠된 승합차나 승용차에는 카파라치가 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9월9일 서울 강남구 신사전화국 인근. 10분이면 중앙선침범을 하는 차량을 4~5대는 족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위반 차량이 많은 곳이다. 운전자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게 선탠을 한 승합차 1대가 주차중이다. 아날로그식 수동카메라로 승합차 안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J씨는 주로 강남 서초 송파구 일대의 교차로를 돌며 위반차량을 찍는 경력 1년3개월의 베테랑 카파라치. 그는 한 달에 700~800건 정도는 너끈히 찍는다고 했다. 건당 포상금이 3000원이니 월 200만~250만원의 포상금을 챙긴다는 얘기다.

그는 “카파라치들은 아무리 목이 좋은 곳이라도 2~4주일 이상 머물지 않는다”면서 “새로운 장소 개발이 수입의 90%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교차로들의 유턴 지점을 꼼꼼히 살펴 유턴 신호가 짧은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것. “좋은 장소를 발견해도 꼼꼼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차량 흐름과 신호체계를 살피고, 위반차량이 많은 시간대도 분석합니다. 시간대별로 차량들이 위반을 하는 위치가 10m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거든요.”

J씨에 따르면 좌회전과 유턴이 동시에 이뤄지는 교차로가 카파라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좌회전 차량 뒤에 서 있던 유턴 차량이 중앙선을 가로질러 유턴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J씨는 “초짜들은 차량과 인적이 드문 곳의 횡단보도에서 신호위반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고, 베테랑들은 운전자에게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를 선호한다.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카파라치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논현역사거리 역삼역사거리 제일생명사거리 신사역사거리 강남구청사거리 차관아파트사거리 등 강남의 대부분의 교차로에서 선탠을 짙게 한 차량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을 카파라치라고 보면 된다. 유턴이 가능한 작은 교차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J씨는 “서울의 다른 자치구도 활동하는 인원이 적다 뿐이지 교통체증으로 위반이 많은 곳엔 반드시 카파라치가 숨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나들목·휴게소 인근 주행 요주의

최근 베테랑 카파라치들은 강남을 버리고 고속도로와 지방국도, 인천 수원 부천 등 경기도의 중대형 도시들로 이동하고 있다. 카파라치의 활동무대가 고속도로 등으로 옮겨가면서 신고 유형도 바뀌었다고 한다. 도심 도로에서 일어나는 중앙선침범 신고가 크게 줄어들고 고속도로의 갓길통행과 전용차선위반 신고가 늘고 있는 것.

경찰에 따르면 올해 위반신고는 신호위반(30%)이 가장 많고 갓길통행과 전용차선위반이 각각 29%와 19%를 차지한다. 지난해엔 중앙선침범(47%) 신호위반(28%) 갓길통행(29%) 전용차로위반(10%) 순으로 신고가 접수됐다. 카파라치들이 고속도로와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운전자들의 항의로 강남의 도로체계가 개선됐고 몰려든 카파라치들로 인해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9000만원의 포상금을 챙긴 것으로 화제가 됐던 카파라치 P씨도 관세청로터리 인근에서 활동하다 최근 고속도로로 활동무대를 바꿨다고 한다.

9월8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 서둘러 성묘를 다녀온 차량과 나들이 차량이 몰려들어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전용차선위반과 갓길통행을 카메라에 담는 카파라치들에겐 최적의 조건. 운전자들이 위반의 유혹을 쉽게 느끼는 나들목과 휴게소 인근이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다.

판교IC 인근에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C씨는 서울 도심에서 활동하는 카파라치들과는 다소 달랐다. 그는 담쟁이 넝쿨에 카메라를 숨겨놓고 담배를 태워가며 리모컨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지난해 여름부터 카파라치 일을 시작했다는 C씨가 지금까지 찍은 위반 사진은 2만여장. 6000만원 이상을 포상금으로 챙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입에 대해 묻자 C씨는 “필름값, 인화료, 기름값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최근엔 경찰의 심사까지 까다로워져 실수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하루에 1000장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뛰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운이 아주 좋은 날에도 70~80장 이상 찍기는 힘듭니다. 야간에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밤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스트로브 빛 때문에 운전자에게 들켜 싸움이 나기 십상이거든요.”

고속도로 갓길 주변 축대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C씨와 같은 고속도로 카파라치들이다. 고속도로 카파라치들의 은폐, 엄폐 기술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 대형 드럼통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사진을 찍는가 하면 도로에 박스형 구조물을 설치해놓고 카메라를 숨겨놓은 뒤 선을 연결해 리모컨으로 위반차량을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C씨는 “담쟁이 넝쿨이 많은 곳이나 숲이 우거진 곳엔 카파라치가 하나씩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카파라치 중엔 실업 상태에서 호구책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많지만 부업 삼아 나선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양재IC 인근에서 만난 카파라치 조모씨(39)는 경기도 수원에서 공구상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카파라치 부업을 하면 아이들 학원비 정도는 벌 수 있다”며 “주말에 3~4시간 정도 일하면 월 40만~50만원은 너끈하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느냐고 묻자, “경찰이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가에서 숨어서 찍으라고 한 것 아닌가요? 우리는 국가를 대신해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카파라치들이 나서면서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들었잖아요. 우리를 욕하기 전에 법규를 지키지 않은 것을 반성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교통사고 예방이 돈벌이로 전락

카파라치가 모여드는 곳의 상당수는 구조적으로 신호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부천 소사구 소사삼거리. 이 지역에선 1주일 동안 약 6000건의 위반 사례가 파파라차들에게 적발되기도 했다. 운전자들은 경인옛길에서 소사삼거리 경인로와 만나는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마지막 횡단보도 위 신호등의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그 앞 50여m 지점에 있는 삼거리 신호등 앞 정지선까지 진행하다 카파라치들에게 걸려든다. 운전자들은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색이면 그 위의 신호등이 파란 신호등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며 “신호체계의 결함 때문에 위반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강남지역 유턴 위반의 경우도 도로 중앙에 불법유턴을 막는 가드레일 등을 세우고 유턴을 허용하는 백색 점선 구역을 늘리면 교통법규 위반이 크게 줄어들 거라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파라치의 단속에 대한 운전자들의 저항도 만만찮다. 운전자들은 카파라치들의 상당수가 교통안내 표기가 허술해 운전자들이 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곳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안티카파라치 사이트(www.antiphoto.com)를 운영하는 이원영씨는 “시민들을 이간질하는 교통위반신고제는 폐지돼야 한다”며 “시민 모두를 예비범법자로 보는 정부의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통위반신고제는 최근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크게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교통법규를 제멋대로 어겨온 운전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몰래카메라를 동원한 원시적 단속이 일시적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교통문화를 이끌어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통위반신고제가 본말이 전도돼 교통사고 예방 목적이 아니라 신고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추석 귀성길에도 교차로와 고속도로를 점령한 카파라치와 운전자들 사이의 실랑이가 이곳저곳에서 벌어질 것 같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파파라치 전성시대'

쓰레기 투기는 물론 보험·증권서도 수요

파파라치들이 교통위반 촬영뿐만 아니라 환경 의료 선거 증권 보험 농업 등으로 활동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전문 신고꾼’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병·의원과 약국 등 의료기관의 불법행위를 신고하는 시민에게 일정액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시민포상금제도를 도입했다. 약사의 대체조제나 의사의 직접조제, 약국과 병·의원 담합행위 등이 신고 대상으로 10만~20만원의 포상금과 병·의원이 지불한 과태료의 1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 농림부도 수입쌀을 국내쌀로 둔갑시켜 파는 행위와 농지 불법전용을 신고하는 사람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쓰레기 투기 장면을 찍어 신고하는 일명 ‘쓰파라치’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교통위반 전문 카파라치의 일부가 쓰파라치로 전업한 상태. 전북 전주에 사는 장모씨는 쓰파라치 활동으로 8600만원의 고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최근엔 보험 증권 등 금융시장도 파파라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불공정주식거래를 신고하면 최고 1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 증권거래소가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하자 교통위반 전문 카파라치가 코스닥위원회에 전화를 걸어와 “코스닥도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할 의사가 있느냐. 도입이 된다면 사무실을 차리고 인원도 고용해 주가조작 적발 전문 파파라치로 전업하겠다”며 정보 수집에 나선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보험 파파라치는 보험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활동한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액수를 줄이기 위해 파파라치를 고용하는 것. 이들은 보험청구인들의 일상생활을 몰래 촬영해 피보험자가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보험금을 타는 행위 등을 적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