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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호/2002.09.26
 

‘눈병 대란’은 방역당국과 학교 탓?

자연 치유 장담, 감염 학생 등교중지 조치 … 학교 안가려고 너도나도 자진 감염

"눈병에 걸리면 무조건 학교에 오지 말라니, 아이들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태풍 루사 이후 120만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며 전대미문의 전염병 피해를 몰고 온 아폴로눈병 파동이 정부의 안이한 대처 때문에 생긴 전형적 ‘인재’였다는 지적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각 안과 전문의들은 “아폴로눈병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교육당국이 감염 학생에게 무조건 등교중지 지시를 내린 것이 눈병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즉 아폴로눈병을 핑계로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자진해서 ‘눈병 걸리기’에 발벗고 나선 것이 이번 눈병 집단감염 파동의 주범이라는 것. 언뜻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끼고 있던 안대를 돈을 받고 빌려주는 아이가 없나, 친구들의 부탁으로 눈을 비벼주는 아이가 없나, 심지어는 눈을 닦은 손수건과 수건을 교실 전체에 돌리다 걸린 아이들도 있습니다.”

안과 전문의들이 전하는 학생들의 눈병 옮기기 백태는 실로 놀랍기만 하다. 서울 강남 L안과의원 이모원장은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심지어 안과의원에 몰래 들어와 쓰레기통을 뒤져 안대나 솜 따위를 훔쳐가는 일까지 있었다”고 전했다.

눈닦은 수건 돌려 한 반 전체 감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8월30일 4300여명에 불과했던 아폴로눈병 발생환자가 단 3일 만에 4만7000명으로 늘자, 아폴로눈병이 확산된 학교의 경우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휴교조치를 내리도록 하고, 휴교가 힘든 학교의 경우 발병학생에 대해 무조건 등교중지를 시키도록 전국 각 시·도 교육청에 지시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휴교 여부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지자 각 학교는 주변 학교의 눈치를 보며 휴교를 망설였다. 휴교를 하면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방학 때 보충수업을 해야 하므로 학교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때문에 각 학교에서는 아폴로눈병에 걸렸다고 하면 해당 학생들에게 무조건 등교중지를 지시했다.

학생들의 이런 눈병 옮기기 세태는 지난 9월9일 모방송 뉴스에서 국립보건원장이 “아폴로눈병은 3, 4일만 지나면 자연치유되므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힌 이후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학생들 사이에 아폴로눈병에 걸려도 큰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없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눈병 옮기기가 장난처럼 유행하기 시작했다.

안과 전문의 이태원씨는 “아폴로눈병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기 때문에 별다른 치료약이 없고, 자연치유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병·의원에 가서 2차 세균감염 방지를 위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시력저하나 날파리증 등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는 질환”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눈이 붓고, 이물감이 있거나 충혈, 분비물 증가 등의 일반적 증상 외에도 심하면 발열, 두통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는 질환이라는 게 안과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설명. 결국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야 할 국립보건원장이 학생들의 전염병 키우기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안과 전문의들은 심지어 “모든 학교에 대해 일제히 휴교령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눈병에 걸린 아이들을 일단 학교에 나오게 한 후 격리시켜야 했다. 그랬다면 이처럼 눈병이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즉 학교에 나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눈병에 걸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특수교육보건과 조명연씨는 “휴교는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장 재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전염 학생의 등교 후 관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학생들의 눈병 옮기기가 번져가면서 발병환자수는 불과 2주일 만에 전국 120만명(9월13일 현재)으로 폭증했다. 이중 105만명이 초·중·고교생. 아무리 성인일수록 면역력이 강해 아폴로눈병으로 인한 피해가 적다고 해도 전국 학생의 13%가 자연발생적으로 눈병에 전염됐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하지만 아폴로눈병이 가공할 위력으로 확산되던 9월 초순 내내 국가 방역을 책임지는 국립보건원은 “4, 5년 주기로 발생하는 아폴로눈병이 8월의 폭우와 태풍 루사가 몰고 온 고온다습한 기후로 인해 창궐하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국립보건원이 아폴로눈병에 맞서 내놓은 대책은 ‘손발을 자주 씻고 환자는 격리시켜 접촉을 삼가라’는 것. 결국 국립보건원은 아폴로눈병의 확산 방지 책임을 개인과 가정, 그리고 각 학교에 떠넘겨버린 셈이다.

대한안과학회의 한 관계자는 “방역당국의 아폴로눈병 주기설만으로는 ‘감염자 120만명’이라는 전무후무한 눈병 전염 사태를 해명할 수는 없다”며 “예년의 경우 아폴로눈병 발생환자수는 많이 잡아도 1만명을 넘지 않았다”고 방역당국의 주장을 일축했다.

안약 수급불균형 사태도 발생

주기적으로 생기는 연례 행사라며 아폴로눈병에 대한 근본적 대책 수립을 방기한 방역당국의 홍보 부족과 무관심도 이 같은 초유의 눈병 전염 사태를 부르는 데 한몫을 톡톡히 했다. 아폴로눈병은 다른 안질환과 달리 체온과 비슷한 환경에서 급속하게 확산되는 특성 때문에 안대 착용이나 적외선 치료를 절대 금하고 있는데도, 각급 학교 보건실에서는 이를 오히려 권장하거나 전염 확산을 막는다며 심지어 안대를 지급한 경우도 있었다. 눈병 확산으로 이틀간 휴교한 서울시 강동구 A고교의 보건담당 교사는 “보건당국이나 교육청으로부터 안질환에 대한 교육이나 통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더욱이 국립보건원은 이번 아폴로눈병의 원인 바이러스(콕사키바이러스 A24형)를 감염자가 100만명에 육박한 9월11일에야 밝혀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이 같은 야단법석을 떨고 난 후에야 국립보건원은 서둘러 아폴로눈병의 법정전염병 지정에 나섰다. 국립보건원 방역과의 한 관계자는 “아폴로눈병을 감시대상지정전염병으로 지정하면 눈병이 발생한 초기에 모니터링이 가능하게 된다.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단 2주일 만에 100만명이 넘는 눈병 환자들이 한꺼번에 안과 병·의원에 몰리자 각 약국에서는 안약 수급불균형 사태까지 빚어졌다. 병·의원 인근 문전약국들에서는 안약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도 동네 약국들에서는 안약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 대한약사회 김대업 정보통신위원장은 “문전약국에서 특정 안약이 다 팔리면 좀 떨어진 동네약국으로 처방전을 분산하면 되는데 병·의원들이 서로 담합한 약국들에 있는 특정 안약에 대한 처방을 고집해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며 “일부 언론은 안약 부족 사태가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수급불균형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 안약 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심지어 아폴로눈병에 처방되는 ‘타리비드점안액’의 경우 같은 약이 두 개 회사에 의해 수입, 판매되고 있지만 서로 대체 조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폴로눈병에 걸려 일주일째 치료를 받고 있는 김모씨는 “분명 대체 안약이 있는데도 안과 전문의가 특정 안약만 고집해 오전에 진료를 받고 오후에 다시 약을 구입한 적도 있다”며 “이는 대학병원도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눈병이 갑자기 유행해 안약이 일시적으로 품귀현상이 빚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폴로눈병에 있어 안약은 증상 완화 역할만 할 뿐 치료 효과는 없다. 비록 안약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3, 4일만 지나면 자연치유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이번 눈병 파동을 지켜보는 국립보건원 방역과의 시각은 차라리 여유롭기까지 하다. 만약 방역과 직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난 3주간 전국 안과 병·의원은 모두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했다는 말인가. 비록 질병 자체의 피해는 경미하다 해도 국민 생활에 큰 불편을 끼치는 전염병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