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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호/2002.02.07
 
[이색화제] 閔家茶軒

‘구한말 문화’가 다시 숨쉰다

명성황후 친척 민익두 대감 저택 수리 … 고급 사교클럽 ‘민가다헌’으로 탈바꿈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수운회관 앞에는 오래 전부터 낡은 한옥 한 채가 있었다. 워낙 오래된 집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폐가처럼 버려져 있었으나 그 이력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 명성황후의 친척인 민익두 대감의 저택이었던 것. 게다가 1930년에 지어진 이 집은 화장실과 욕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최초의 개량한옥으로, 집에 비로소 근대적 건축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이 집은 외관은 전통한옥이지만, 방과 뜰 사이에 복도가 하나 더 들어간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지금 종로 국세청 자리에 있던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용.

바로 이런 이력 탓에 민익두가(家)는 서울시 민속자료 15호로 지정되어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지만, 집주인(민익두의 후손은 이 집을 팔고 미국으로 이민)이 보살피지 않아 인사동 주변 양아치나 노숙자들의 거처로 이용되는 등 훼손이 심해 자칫하면 민속자료로서의 가치를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집을 활용한다 해도 국밥집이나 하면 어울릴 정도로 그 격이 낮아졌던 것.

그러나 지금 이곳에 가면 새집이 들어선 듯, 놀랄 만큼 고아한 풍모의 한옥이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주변의 조악한 건물들 사이에서 유독 번듯한 모습으로 고고하게 자리잡은 이 집이 바로 고급 사교클럽으로 새로 태어난 ‘민가다헌’(閔家茶軒)이다. 낮에는 주로 전통차와 간단한 식사를, 저녁에는 와인과 정식을 즐길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자 파티 장소로 변모한 것. 2월5일 개관할 예정이다.

‘민가다헌’은 다분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외국 대사관 클럽을 연상시킨다. 이 집이 지어진 1930년대 당시의 문화를 복원하고자 한 것이 ‘민가다헌’의 기본 컨셉트. 다이닝 룸이나 카페에 들어서면 마치 구한말 외국 대사관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하다. 이를 위해 미국 마이애미대학 건축실내디자인학과의 박진배 교수가 직접 실내 디자인을 맡았다. 기존 한옥의 미는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품격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이루어진 것. 당시 사용했던 빅토리아풍의 가구나 소품 등이 국내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탓에 이것들은 모두 미국에서 들여왔다.

‘민가다헌’은 개인사업을 하던 이종원씨와 ㈜와인나라의 우종익 대표가 공동 출자해 운영한다. 이종원 공동대표는 “이 집을 처음 보는 순간 너무 반해 한옥의 미를 살리면서도 고급 사교클럽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며 “유럽의 성이나 저택들이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 등으로 재활용되는 것처럼 우리도 문화재의 관광상품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월드컵 경기를 통해 외국인들이 손꼽는 명소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대표의 소망.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집을 전통찻집으로만 제한하려는 서울시 방침 때문에 ‘민가다헌’과 종로구청 사이에 행정소송이 진행중이라는 사실. 슬기로운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 구한말 귀족의 식당을 연상시키는 다이닝 룸.
▶ '민가다헌' 앞뜰에서 담소를 나누는 외국인들. 전통한옥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에 "원더풀"을 연발했다.


▲ '민가다헌'에서 가장 품위 있는 공간의 하나인 서재. 공간에 배치된 응접 세트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빅토리 양식의 가구들이다.
▶ 카페에서 내다본 복도의 모습. 햇빛이 들어오는 전통 창호의 모시 블라인드가 옛스런 품격을 살리고 있다.

▶ 운치 있게 꾸며진 복도의 모습.
▲ 동양화 병풍과 빅토리아 양식 가구가 멋지게 만나고 있는 카페의 모퉁이.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 < 사진·조영철 기자 >